‘거기가 그렇게 좋아?’
‘거기 뭐가 있다고 그렇게 가고 싶어 해?’
‘거기 꿀이라도 붙여놓고 왔어?’
도시 사는 자녀들이 시골에서 고생하는 노모를 모셔갔다. 좀 편하게 쉬다 가시라고 마음 쓰는 착한 자식들의 효심이다. 그런데 노모는 이틀이 지난 뒤부터 고향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자녀들이 그런 노모를 보고 안타까워하며 한마디씩 한다. 정말 늙은 어머니는 시골에 무엇을 두고 왔기에 고향 집에 가고 싶어 안절부절못하시는 걸까. 어머니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자식들이다. 그 자식들 중엔 아무도 그곳에 살지 않는데, 어떤 소중한 것이 거기 남아 있기에 노모는 저녁나절이면 더 서성거리시는지 모를 일이다.
노모는 시골집에 아주 많은 것들을 두고 왔다. 옆집에 ‘밥 좀 줘라.’하고 부탁해 놓고 온 복구(개)가 제일 걱정이다. 장에 다녀올 때 멀찍이서 목소리만 들려도 반가워 펄쩍펄쩍 뛰며 달려와 안기는 기특한 녀석인데, 잘 있는지 걱정이다. 늦은 밤에 ‘저, 여기 있어요.’라고 멍멍 짖는 녀석이 멀리 있는 자식보다 의지가 된다.
논농사는 위탁해서 짓기 때문에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집 사방에 있는 밭이 걱정이다. 마른 땅에 물주고 심어놓은 고추 모가 걱정이다. 뽑고 나서 뒤돌아서면 또 돋아나는 것이 풀인데, 며칠씩 쳐다보지 못한 텃밭에는 ‘호랭이가 새끼쳤을 거다.’ 얼른 가서 고구마 순도 놓아야 하고, 밭두렁에 콩도 심어야 한다.
작은 텃밭이지만 먹을 거 안 먹고 장만한 땅인데, 그냥 두면 금방 풀숲에 덮여 황폐해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냥 두겠는가. 노모는 그 땅에서 아주 소중한 것들을 가꾸고 있다. 자신의 손이 필요하고, 자신이 도움을 줘야만 하는, 그래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것들을 찾아내고 있다. 결국은 그것들은 자식들이 올 때마다 봉지 봉지 담아 꾸려주는 것들이지만.
두고 온 것이 그것뿐이겠는가. 장독대의 간장이며 된장 항아리도 해가 좋으면 뚜껑을 열어줘야 하는데, 일 년 농사인 장맛을 버리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자식들은 사 먹는 것이 더 맛있다고 담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노모는 다 안다. 어미의 일손을 덜어줄 요량으로 거짓말하는 것이라는 걸. 시골에 올 때마다 간장, 된장, 고추장까지 듬뿍 퍼가는 걸 보면 안다.
그곳에 가고 싶고 가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모두 일하러 나간 도시의 빈 아파트에서 노인은 저 혼자 중얼거리는 TV를 친구 삼아 자다, 깨다를 되풀이하며 날을 보낸다.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 입에서 군내가 날 정도다. 직장으로, 학교로 모두 나가버리면 밤늦게야 돌아오는 고단한 자식들을 보면 안타깝다. 노모의 하루는 너무 길고 지루하다. 자식들은 아파트의 노인정에 가라지만 7, 80년을 전혀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인데 무슨 이야기를 하며 소통하겠는가.
두고 온 것 중에 가장 중한 것은 사람이다. 그곳에 가면 ‘성님도 있고, 동갑네도 있고, 동상’도 있다. 회관에 모여 밥도 해 먹고, 10원 내기 고스톱도 치고, 노래도 한다. 옆집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면 얻어먹으러 가도 아무렇지 않다. 틀니가 덜컥거리며 웃는 동갑네를 봐도 ‘암시랑 않다.’
장날 장에 가면 앞 장에 왜 안 왔냐며 안부부터 물어주는 사람이 있어 좋다. 농협에 가면 시원하고 달달한 커피를 타주며 자세히 가르쳐주는 직원이 있어 좋고, 보건소 선생님은 수시로 찾아와 건강과 안부를 묻는다. 사실 아들딸보다 낫다.
병원에 가도 마찬가지다. 자상한 의사 선생님이 쭈글쭈글한 손을 잡고 어디가 아프시냐고 물으며 진찰하는데, 아들만큼이나 아니 아들보다 더 미덥고 고맙다. 사실 자식한테야 어찌 세세히 아픈 속내를 말하겠는가. 그런데 도시에는 그런 의사가 어디 ‘있을랑가’ 몰라?
아니 또 중한 것을 놓쳤다. 산, 길, 개울, 들판은 맨날 보는 것들이지만 질리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이놈의 촌구석’ 하며 도망도 못 가고 종주먹만 댔으나 그 들판에 우리 땅도 있고, 저 산에 먼저 간 영감님도 있다. 개울에는 손을 호호 불며 빨래하던 젊은 시절의 자신이 있다. 버스를 타면 창밖에 휙휙 지나가는 풍경들이 낯설지 않아 좋다. 저기 저 멀리 보이는 길을 따라가면 친정 동네로 갈 수 있다는 것도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아차 하여 길 잃을까 걱정되고,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으니 밖에 나갈 수도 없고 완전히 바보가 된 것 같다.
그래, 나는 거기가 좋다. 거기 꿀 붙여놓고 왔다. 그리니 빨리 가서 나를 기다리는 것들을 만나야 한다. 노모는 공연히 역정을 내며 가방을 꾸린다. (2020.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