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수필 어떻게 쓸 것인가

by 문영

『수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작고하신 윤모촌 선생이 집필한 수필 쓰기 지도서 이름이다. 그리고 수필 공부에 진척이 없는 나의 화두이기도 하다.

몇 년 전에 도서관에서 『수필 쓰는 법』이라는 책을 빌려 읽었다. 잘못된 점을 지적한 예문들은 내가 쓴 글과 영락없이 닮은꼴이 아닌가. 제시한 글은 어디가 잘못되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지적해 놓은 것을 보고, 수필이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이 잡히는 듯했다. 옆에 두고 정독하면서 수필 쓰기 지침서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입하려고 출판사에 전화했으나 절판된 책이라고 한다. 우여곡절을 겪어 『수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새 이름을 달고 세상에 다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은 뒤 모촌 선생께 감사의 글을 보냈다. 책을 구하지 못했을 때, 소장본이라도 얻고 싶어서 작가에게 보내는 글을 써 둔 일이 있다. 그 내용을 수정하여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배웠다는 감사의 글이었다. 써 놓은 글이 있으면 보내 달라는 내용의 답장을 받고, 몇 차례 졸필을 복사해 보냈다.

‘참 아름다운 글이다. 그러나 아름답게 쓴 글이라고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필의 핵심인 사유(思惟)가 빠져 있다. 사물이나 다른 사람의 삶을 묘사(描寫)하고 기록(紀錄)만 할 것이 아니라 삶과 자연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쓰도록 해라.’ 눈이 나빠 확대경을 통해 글을 읽는다는 선생은 A4 용지로 뽑아 보낸 내 글을 전지 크기로 확대하고, 꼼꼼히 지도 말씀을 적어주셨다. 글 쓸 기력이 없다 하시며, 전화로 지도 조언을 해 주는경우도 있었다.

처음의 기쁨은 부담으로 변해갔다. 오히려 수필의 늪에 빠져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사유(思惟)라는 함정에 빠져, 글 앞에 나서서 선생 노릇을 일삼았고, 묘사라는 굴레에 씌워 이것저것 군더더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내 멋대로 쓸 때는 글 쓰는 것이 즐거웠으나 차츰 힘든 시간으로 바뀌었다. 시력이 좋지 않으신 선생께 글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부탁이라는 핑계가 자리 잡아갔다.

교직에 복귀하기 위한 임용 고시는 나에게 좋은 피난처였다.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합격 후 다시 글을 쓰고 지도 말씀을 들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때 합격 후에 소식 전하겠다고 한마디만 전했더라면 선생과 소식이 두절 되지 않았을 것이고, 訃音을 듣고 아차! 하며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4년은 긴 시간이다. 편지 올리기도 서먹하고, 잊으셨겠지? 하는 생각이 앞섰다. 오랫동안 쉬다 복직했기 때문에 이것저것 어려움이 많았고, 객지 생활도 낯설었다. 여전히 자판을 두들겨 대며 글을 썼지만 모촌 선생이 말씀하신 사유(思惟)라는 놈은 미꾸리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다못해 올챙이라도 손에 쥐고 선생을 찾아뵙겠다던 내 꿈은 서서히 부서져 내렸다.

사유(思惟)란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이고,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을 말하며, 사색, 명상, 사고와 비슷한 말로 국어사전에 기록되어있다. 이렇게 사전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은 잡히지 않는 그 녀석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다.

계간지에 종종 게재된 선생의 완고하리만치 담박한 글은 나를 더 위축시켰다. 붓을 놓을 수밖에 없어 마지막 묶게 된 책이라는 『촌모씨의 하루』에 실향민으로 살아온 선생의 외로운 삶이 배어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아름답게 나이 든 노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가슴이 뜨끔했다. 그리고 계간지를 통해서 작고하셨다 소식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수필을 잘 쓸 수 있는가 하고 묻는 이에게 모촌 선생의 『수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권한 일이 있다. 이 책을 읽은 그는 자신은 수필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수필 쓰기는 글쓰기가 아니라, 마음을 수련하는 것으로 느껴져 엄두도 못 낼 일이라 한다. 현명한 사람은 어려움을 감지하고 발도 디밀지 않으려 하는데, 나는 왜 몇 년씩이나 붙들고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이제는 수필 어떻게 쓸까? 하고 머리를 싸매지는 않으려 한다. 좋은 글이 안 써진다고 초조해하지 않기로 했다.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능력이 없는데 안달을 한다고 안 될 일이 될성싶지 않다. 그렇다고 글을 안 쓸 수는 없다.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고, 가장 즐거운 일이 글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읽고 싶을 때 좋은 수필을 골라 읽고, 쓰고 싶을 때 마음 가는 대로 손가락 가는 대로 자판을 두드리려 한다. 윤모촌 선생의 『수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늘 책상머리 손 닿는 곳에 놓아두고 사유(思惟)란 어르신이 어디쯤 오고 계신지 기다리면서.

(2021. 계간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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