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짐 챙기기가 아니라 짐 우겨넣기를 하고 출발한다. 돈, 여권, 카드 두 장, 핸드폰만 챙기면 되니... 다른 부족한 건 현지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11시 김해공항 도착. 남이네 가족은 ‘해운대 마라톤’ 때문에 길이 막힐까 봐 새벽같이 출발하여 8시 반부터 공항에 앉아 있었다. 다행이다. 남이네 언니들을 처음 보는 순간, ‘됐다. 모두 건장하고 단단하시다. 이제 걱정은 접어도 되겠다.’ 남이의 큰언니 미, 둘째 언니 경, 셋째 언니 주, 친구 혜와 서먹하게 통성명을 나눴다. 두 달 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그동안 날 돌보느라 고생했다. 즐겁게 쉬다 오렴.’ 하면서 보내주신 여행이라 했다.
26번 카운터에서 발권하고 수하물을 보냈다. 들고 온 남은 물도 전부 마신 후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출국 신고 후 5번 게이트 앞에서 다시 모였다. 요즘은 면세점에서 사고 싶은 게 없어 면세점 투어는 하지 않지만, 시간이 많이 남아, 돌아다녀 보니 5구 멀티텝이 35달러다.
비행기는 8분 전부터 바퀴를 움직이더니 정확히 13시에 이륙했다. 생전 처음 3인석에 혼자 앉는 쾌거를 거두었으나, 나름 쓸데없는 품위를 지키느라 꼿꼿하게 앉았다. 기내식으로는 쇠고기면과 애플 주스를 주문하고 커피도 마셨다. 맛? 중간치는 되겠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몽골은 텅 비어 좋다, 모든 게 너르다. 역시 몽골은 아낌없이 속살을 내비치는 배포 큰 나라다. 광활한 평야의 모습에 웅크렸던 심신이 쫙 펴진다. 4시간 뒤, 드디어 우리는 우주에서 지구로 내려와 몽골 땅을 밟았다. 얼굴 사진, 양쪽 엄지 손가락, 왼손가락 네 개, 오른 손가락 네 개의 지문을 찍고 나서야 입국 허락을 받았다. 그런데 남이는 지문도 안 찍고 그냥 통과한다, 왜? 너무 현지인처럼 생겨서? 그래도 외국인 줄에 서 있었는데? 지금도 그 이유는 모른다. 그래도 몽골이 그냥 들어가라니 들어가야지.
입국이 너무 수월하다고 모두들 좋아했다. 입국신고서 때문에 어느 호텔에서 잘 것인지, 그 호텔의 전화번호가 몇 번인지를 찾느라 소란이 있었으나 출입국 신고서 따위는 필요 없었다. 대국답게 시원시원하고 간단하다. 수하물 트랙도 A, B, C, 세 개뿐이다.
투어사에서 기사분이 마중을 나왔고, 유심칩 구입을 도와주었다. 5달러인 줄 알았는데, 여행 기간이 10일 넘어서 4,000투그릭(12달러)을 지불해야 했다. 항상 같이 있을 여정이기에 남이와 나, 두명만 유심칩을 깔았다. 남이에게 본 유심을 잘 간수하라고 당부했건만, 핸드폰 케이스에 소중히 넣어 둔 유심은 여행 중 바람 속으로 휘이웅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걱정마시라, 한국에 돌아와 재구매 가능하다, 물론 이 기회에 쓸데 없던 전화번호들도 날아가 저절로 정리가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 울란바토르 시내에 가까이 올수록 교통 체증은 심했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거의 살인적인 정체를 경험할 수 있다. 구글 네비게이션을 찍어보면 걸어서 20분 거리인데, 버스로는 25분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할매들을 태운 스타랙스는 얼반 저녁 7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투어사에서 무료로 제공한 게스트하우스는 시내 중심 아파트 1층이며, 뜨거운 물이 나오고, 깔끔하다. 이제 ‘할매팀’ 합체의 시간이 다가왔다. 미언니, 경언니, 나, 주언니, 남, 혜의 순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이번 여행이 무한한 행복과 더없는 힐링, 그리고 삶의 마지막까지 지니고 갈 추억을 흩뿌려주길 기원했다.
자투리 시간에 동네 한 바퀴 산책. 국영백화점까지 1Km 남짓 걷는 동안 시선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진다. 1년 반 전 여행길의 기억과 지금 눈앞의 풍경을 맞추느라 머리가 바삐 돈다. 국영백화점의 캐시미어 매장은 아주 넓어졌고 옷들은 다양한 디자인에 고품질이라, 몽골이 캐시미어 사업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그 정성이 엿보인다.
GS의 ATM기에서 5만 투그릭을 인출해 저녁용 김밥과 우유를 샀다. 나중에 계산해 보니 GS ATM기 수수료가 꽤 많아, 다음부터는 큰 슈퍼마켓이나 은행의 ATM기를 사용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가겠다는 말에 한참 망설이던 투어사의 팀장은 했었다. 라면식 둥지 냉면을 들고 행복해하는 팀장의 미소에 우리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들고 온 컵라면과 찌짐, 샐러리, 차 등으로 저녁을 때우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며 행복은 배가되었다. 이층 침대에 몸을 누이고, 모두 내일의 출발을 상상하며 차례차례 알파파 수면으로 빠져든다. 한국시간으로 새벽 1시, 이제 나도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