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야발 사원, 신의 가피를 받다

열두째 날, 4월 3일(목)

by 김연화


여행지별로 수많은 사원을 들렀지만, 기억에 남는 몇 개의 사원 중 한 곳이 아리야발 사원이다. 지난 여행에서도 이번 여행에서도.

바위에 조각되고 그려진 문수보살(부처의 지혜), 관세음보살(자비), 바즈라파니(힘), 미륵을 뵈며 걷기 명상을 시작한다. 사원으로 오르는 길목 곳곳에는 불교 경구, 만다라, 깨달음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을 읽고 천천히 걷는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고, 마음의 소음도 내려놓고, 깊은 고요와 마주하게 된다.

흔들리는 출렁다리도 천천히 건너고, 108개의 흰 계단과 8개의 검은 계단을 기도하며 오르면 사원이 나타난다. 사원의 외곽에 설치되어 있는 108개의 마니 차크라를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서 사원을 한 바퀴 돌며 또 기도한다. 그 속에는 300만 개의 부처님 진언이 들어 있다. 그제야 아무도 없는, 화려하고 자그만 사원 내부를 돌아볼 수 있고, 잠시 세상을 벗어난 듯한 평온이 스민다.

사원 밖으로 나오면 테를지의 풍경이 속삭인다. ‘지금 충분히 누리고 있으니, 더 바라는 것 있으면 그만 내려놓으라’고. 계단에 앉아 있다 바람의 종소리가 날 때쯤이면 자리를 뜬다. 다시 사원의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엄격한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고 인류에게 업적을 전수한 ‘밀라레파’의 동굴이 나온다. 조금 더 가면 부처님의 발자국을 볼 수 있다. 이 발자국은 영적 여정의 길을 상기시키기 위한 상징으로, 전 세계에 3,000개 이상 존재하며, 그 중 약 300개가 일본에 있고 스리랑카에 1,000개가 있다. 중앙에 다르마차크라(법의 바퀴) 또는 108개의 길조 표시가 새겨진 것도 있다. / (출처 : 사원 안내판)


<아리야발 사원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
거북바위와 게르쇼핑몰

노을이 입혀주는 따뜻한 옷을 걸치고 마음 한 자락은 사원에 걸쳐두고 천천히 내려와도 할매들은 다 이해하고 짜증 한 점 없다. 아리야발 사원에서 내려온 밤이면 꼭 기분 좋은 꿈을 꾼다.

스쳐 지나가듯 거북바위를 보고 게르 쇼핑몰에 들른다. 거북바위는 초원과 자연의 정령들이 자리 잡은 테를지 동쪽의 수호신이자, 아리야발 명상 사원의 수호석으로 여겨진다. 거북의 걸음처럼 천천히, 그러나 끈기있게 인내와 겸손을 다짐하며 거북의 둘레를 한 바퀴 돌고 싶었다. 그러나 바위가 어둠을 타고 들며, 위험을 경고한다.


큰 게르 쇼핑몰에 들어서니 할매들의 피곤은 눈 녹듯 사라지고, 걸음도 빨라지며 눈빛이 반짝인다. 하기야 예쁜 것은 사람의 눈을 녹이고, 마음을 녹이고, 기쁨의 샘을 자극하지! 나도 덩달아 마음이 바쁘다, 선물 주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차례로 줄을 서니. 잣은 카페를 운영하는 동생에게, 젊은이에게는 워머와 장갑을 주고 싶다. 나를 위한 선물로 인형을 사고 싶었지만 가격이 만만찮아 포기했다. 게다가 파란 옷을 입은 예쁜 아가씨 인형은 애초에 소장용이라 팔지도 않는단다.


<팔지 않는 인형, 비싼 인형, 주어진 수태차>
<게르형 쇼핑몰, 밤에 갔다가 다음날 아침에 또 갔다.>


양고기 허르헉

차에 올라 어기네 친척 집으로 이동. 저녁 만찬은 고종사촌 동생이 만든 양고기 허르헉이다. 이곳 테를지는 어기의 할아버지께서 사시던 곳이고, 어기도 어린 시절 뛰놀던 추억이 서린 곳이란다. 몽골에서는 채소가 귀해서 많이 먹지 못하는데, 어기는 끼니마다 토마토, 쌈, 오이, 당근, 양파를 곁들인다.

고기와 구근채소, 구운 돌을 넣어 불 위에서 익힌 허르헉은 소금에 담백하게 찍어 먹는다. 솥 안의 따뜻한 돌은 손바닥의 나쁜 기운을 빼주고 건강에 좋다는 속설이 있어 할매들은 돌아가며 자갈돌을 쥐고 손바닥 마사지를 한다. 신선한 양고기를 사용해서 그런지 잡내가 없고, 오늘은 밥 대신 빵이 곁들여져 색다른 풍미를 선사했다. 할매들 맛있어서...


팁 전달식

그리고 간단하고 아름답고 진심이었던 팁 전달식이 있었다. 아무래도 팁이 너무 적은 것 같아 할매들이 자진해 달러를 더 갹출했다. 우리가 받은 사랑과 정성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상한선을 넘길 수도 없어, 적정선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기네 아들이나 더기네 아이들이 한국으로 유학 오면 무조건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오늘이 어기, 더기와 함께 하는 마지막 밤이다.

시골집에서 동네 밤마실 다녀오듯, 어둠 속에서 큰소리로 고종사촌들과 인사를 하고는 숙소로 왔다. 마지막 여행자 게르는 편백향 가득한 완전 새로 지어진 복층 리조트였다. 전기만 꽂으면 난방이 되는 곳. 오는 길에 보니 불빛이 휘황찬란하고, 심지어 큰 바위 위에 설치된 네온사인은 밤새도록 켜져 있을 작정인가 보다. 2023년 가을보다 숙박 시설이 배 이상 늘어난 듯하다. 경제원리에 따르면 막을 순 없지만, 게르도 아닌 리조트들이 이렇게 늘어난다면 앞으로 이곳에서 은하수 보긴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이제 침대 선점하기 가위바위보는 없어졌다. 난 자료를 정리하다 그대로 잠들 수 있는 거실의 소파를 선택했고, 남이는 어기네 방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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