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칭기스 칸 기마상을 오르다

열두째 날, 4월 3일(목)

by 김연화
☑ 칭기스 칸 기마상 (Genghis Khan Statue Complex)
☑ 칭기스 칸 기마상 (Genghis Khan Statue Complex)
세계에서 가장 큰 기마 동상이며, 테를지 국립공원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칭기스 칸이 황금 채찍을 발견한 장소라는 전설이 남아 있어 몽골 민족의 역사적 기원지로 여겨진다. 높이는 기단 포함 약 50m이며, 재질은 스테인리스강 250톤을 사용하였다. 기단부인 원형 구조물에는 내부에 박물관, 전시장, 기념품점이 포함되어 있으며, 칭기스 칸 동상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몽골 초원 풍경은 압권이다.

6시. 우리 방의 열쇠 분실로 인해 출발에 혼선이 있었다. 결국 30,000원을 열쇠값으로 지불하면서 몽골에 와서 처음으로 살짝 빈정이 상한다. ‘일찍 일어나는 양이 풀 한 포기라도 더 먹는다’는 말이 있던가? 해도 뜨기 전 들판에 나온 저 양들은 어젯밤에도 귀가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몽골에서는 차량이 도로로 빠져나갈 때 통행료 개념의 도로비를 낸다. 보통 1,000원 가량, 울란바토르에서는 2,000원이다.


밀밭

8시 8분. 중간에 차를 세우고 20분간 차 안에 앉아 빵을 잘라 커피, 과자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어젯밤 과식 탓에 오히려 이런 소박한 아침이 반갑다.

8시 48분. 몽골에서는 보기 드문 경작지, 밀밭을 지난다. 거대한 밀밭은 개인 소유라 한다. 여름 동안 내린 빗물을 저수지에 모아 두었다가, 스프링클러로 밀밭에 물을 공급한다고.


무시무시한 모래바람

9시 17분. 무시무시한 모래바람이 하늘 끝까지 치솟는다. 차 문이 두꺼움에도 모래와 바람이 스며든다. 모래 안개에 숨이 막히고, 눈이 따갑고, 코도 꽉 막힌다. 오늘, 황사의 진면목을 확실히 본다!

정말이지 몽골은 자신의 속살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다 보여주는구나. 양쪽에 팬스가 설치된 고속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리는데, 싸락눈과 황사가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어버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주 오는 차량의 안개등조차 흐릿하다.

어기와 더기는 모두 마흔 살 동갑내기다. 어기는 열두 살 아들과 세 살배기 딸, 더기는 열아홉 딸과 일곱 살 아들을 두었다. 어기의 남편은 네 살 연하의 흐미 가수다. 전통예술로는 돈을 많이 벌기 어려운 몽골에서의 상황 때문에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묻자, 대답은 간단하다. ”제가 더 많이 벌면 되죠 뭐.“ 그래! 그거지. 그게 지혜로운 삶의 해답이지. 어기가 더 예뻐 보인다.

11시. 싸락눈이 길 위를 얇은 레이스처럼 구른다. 몽골의 대지가 하얀 레이스를 덮고 아련한 정적에 잠긴다. ‘갈색이 이렇게 숭고하고 아름다운 기운을 머금고 있다는 걸 몽골에서 처음 알았다.’는 큰언니의 감탄이 떠오른다. 그 위대한 땅의 색에 하얀 레이스까지 덮였으니...


피자라는 것

13시. 교통체증을 피해서 울란바토르 외곽 도로로 들어섰다. 어기씨는 '여기로 가면 아주 소액이지만, 테를지 국립공원 입장료도 아낄 수 있다.'고 좋아한다. 그래, 공짜 좋아하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지. 슈퍼마켓 안의 피자집에서 젊은이들처럼 피자와 음료수로 점심을 때운다. 피자 맛이 의뢰로 쌈박하니 맛있다.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먹었던 짜기만 하고 비싼 피자보다 세 배는 맛있다. 그래도 생애 최고의 피자는 주문받고 난 뒤부터 파인애플을 깎고 도우를 만들기 시작하던 라오스의 피자지.

맛난 피자와 슈퍼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한국음식들, 제주 청귤차까지!


역시 울란바토르는 복잡하다. 산등성이까지 집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그러나 외곽 지역은 시내보다 덜 붐비는 탓에, 넉넉한 이들은 이 외곽에 세컨하우스를 가지고 있다 한다. 스키장도 눈에 들어온다.


칭기스 칸 동상

15시. 칭기스 칸 동상에 도착했다. 박물관 한국어 해설 투어를 신청하기 위해 어기가 뛰어간다. 그동안 우리는 높이 4m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칭기스 칸의 전통부츠 ‘굿’을 보며 감탄하고, 칭기스 칸의 아들, 손자의 초상화를 보면서 몽골 제국을 만든 가문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발뒤꿈치는 둥글고 뾰족한 장화의 앞코는 땅을 해치지 않고 살겠다는 몽골 유목민의 철학이 담긴 디자인이란다. 대단하지 않은가! 개미를 밟을까 봐 걸음걸음 조심스럽다는 노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난 그동안 얼마나 무심히 땅을 차고 다녔던가...

지하 박물관에서 김일성대학 출신의 동양학 전공 시니어께서 한글 해설을 해주셨다. 몽골 전통 무기, 갑옷, 장신구와 유목민의 생활용품(솥, 활, 안장 등)에 관한 해박한 설명이 이어졌다. 칭기스 칸의 주요 원정 경로가 담긴 지도를 보며, 고비의 황사가 대한민국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얘기하자, 그는 대범하게 웃었다. 어기는 몽골에 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연락해도 된다며 해설사의 연락처깢 건넸다. 자꾸 이것저것 뭔가를 물어보는 내가 부담스러웠던 건 아니었겠지?

1층으로 다시 올라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마상의 말갈기 위로 나가 앞으로 걸어가면, 몽골 초원의 말로 다 담기 어려운 장관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맞은편 언덕 앞에는 칭기스 칸의 어머니 호엘룬을 기리기 위한 관세음보살 조각상이 있다. 관세음보살은 어머니의 지혜와 자비, 인내를 상징하는데, 실제로 호엘룬은 어린 자식들을 홀로 키우며 부족의 생존을 책임졌고, 그 인내심은 훗날 제국의 씨앗이 되었다.


100년 전 몽골의 풍습이 담긴 귀한 사진엽서

기념품 가게에서 플레잉 카드와 우표, 자석을 사고 100년 전 몽골의 풍습이 담긴 귀한 사진엽서도 구입했다. 과거의 순간이 엽서 속에 응고된 듯했다.


1층에서 왼편으로 돌아가면 몽골의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몽골의 미술품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색감이 탁월하며 명상적인 요소가 깊이 스며들어 있다. 유목문화, 불교미술, 샤먼주의적 상징을 현대적 형식과 결합한 작품들, 말・게르・초원・불교 탕카 등의 요소를 추상화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젠더, 도시화, 환경 파괴, 정체성 등을 탐구하는 작품도 있다.


내가 가진 엽서 중 수작으로 꼽을 수 있는 몽골의 그림엽서들

동상 앞에서 잠시 낙타를 탔다. 낙타는 일어설 때 앞다리와 뒷다리를 따로 움직인다. 갑작스런 기울기에 중심을 잃을 뻔했지만, 이내 균형을 잡고 높아진 시선에 놀랐다.

낙타의 걸음은 느리지만 고집스러운 리듬을 가지고, 푹 푹 푹,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중하게, 그러나 확실히 디딘다. 그 움직임은 말의 경쾌함과는 전혀 다르다. 배에 올라 바다를 떠도는 듯, 부유하는 듯, 어딘가로 흘러가는 느낌. 요동치는 낙타의 걸음에 내 몸도 따라 흔들린다, 마치 오래된 기억 하나가 툭, 뒤척이는 것처럼. 사막을 걷는 자의 풍경을 기대했으나 쌍봉낙타 앞 봉의 털을 움켜쥐고 덜컥거리는 내 모습은 좀 멋지지 못했다.


이리도 늘어지게 누운 낙타를 본 일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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