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르긴 터그 화산에서의 기도

열한째 날, 4월 2일(수)

by 김연화

☑ 허르긴 터그 화산(Horgo Volcano)

몽골 중북부의 아르항가이 아이막(Arkhangai Aimag)에 위치한, 해발고도 약 2,240m의 순상화산이다. 약 8천 년 전 마지막 분화를 한 휴화산으로 분화구와 용암지대가 잘 보존되어 있다. 분화구 가장자리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고, 아래로는 굳은 검은 용암밭이 펼쳐져 있어 이색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숲, 호수, 초원이 어우러진 몽골 내륙의 경이로운 자연 풍경을 볼 수 있다.



허르긴 터그 화산에서의 기도


13시 53분. 아직도 도로 위다. 소도 말도 양도 낙타도 야크도 모두 고개를 떨군 채 땅바닥만 노려보고 있다. 마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을 눈앞에서 실연하는 장면처럼... 양 쪽으로 물을 쫘악 튀기면서 시냇물을 오프로드하고, 오랜만에 ‘어기더기 파이팅!’을 외치며 환호한다. 산림지역에 들어서고 산양도 보인다. 바퀴 뒤에 모포를 깔고 진흙탕 길을 통과하기도 하고, 나무와 나무 사이 5cm 가량의 여백을 두고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기도 한다. 푸르공이 자작나무 사이에 걸리는 줄 알았다. 이것이 정녕 차가 갈 수 있는 길이란 말인가!

더기를 믿지 않았으면 그냥 돌아서 내려가자 했을 터이다. 푸르공이 우리 대신 등산하는 줄 알았다, 할매들이 아픈 무릎을 끌고 산 정상으로 오르는 걸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더기 씨. “이제부터 우리가 걸어갈 테니 제발 차를 세워요.“ 몇 번 간청을 하고 정말, 정말 더기 씨도 더 이상은 못 올라갈 때 우린 비로소 차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16시, 허르긴 터그 화산 등반 시작. 화산재라 부드럽기도 하고 발이 푹푹 빠지고 미끄럽기도 하다. 몽골 와서 처음으로 스틱을 썼고 미 언니는 나무 지팡이를 하나 주워 들었다. 산의 기울기가 만만찮아 자꾸 뒤를 돌아보며, 사방, 사철 푸를 것 같은 평원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분화구 가장자리! 세상 고요의 원천인 듯한 분화구 둘레길을 조용히 명상하며 한 바퀴 돌고 싶었으나, 어기가 허락하지 않는다.

심장에 바람이 든다. 샤먼의 축복처럼 가랑비가 내리고, 우린 시계도는 방향으로 3바퀴, 천천히 오보를 돌기 시작한다. 이곳 오보는 올라올 때 들고 온 나뭇가지를 덧놓고 우유나 보드카를 조금 뿌리기도 한단다. 자연과 신앙, 인간의 삶이 조화를 이루는 몽골식 기도. ”몽골을 지켜주소서, 이 땅을 빌려 잠시 다녀가는 우리의 여행길을 돌보아주소서!“



칭기스 칸의 아들 오고타이 칸은 모든 종교를 인정하였다. 종교를 정치의 도구가 아니라, 다민족 국가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통치 수단으로 삼았고, 이후 몽골은 불교, 이슬람, 기독교, 도교, 샤머니즘 등이 공존하고 있다. 어기네 부부는 다른 나라에 선교 활동까지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17시 36분 하산, 목적지까지 120Km 남았다. 온몸이 몽골몽골하고 쵸쵸하다. 말문 터진 더기, 하루 종일 시끄럽다. 과묵한 상남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말 못해 죽은 귀신’이 왔나 싶을 정도로 수다쟁이다. 어기는 눈을 감고 자면서도 더기의 말에 반응해준다, 그래도 더기는 웃으며 즐겁다. 고려 거란, 주몽, 장금이, 잘생긴 왕 이서진까지 등장. K-드라마의 힘, 대단하다! ”더기, 운전에 관심을 좀 기울여야지!“

강도 마음 놓고 풀어지고 있다. 가장자리엔 물이 졸졸 흐르고, 물에 잠긴 전봇대도 숨을 토한다. 날씨요정할매들은 오는 봄을 직감한다. 말들도 발정이 시작되었는지 우리가 보든 말든 무조건 올라탄다. 봄은 참 좋다!

18시 26분. 맞은편 차가 다가오며 불빛을 반짝거린다. 어기와 더기 얼른 안전벨트 착용. 아하, 여기도 단속을 미리 알려주는 공조 문화가 있구나. 단속 구간 벗어나자 말자 벨트를 벗어버리는 어기 더기, 하기야 벨트 매고 말 타진 않았으리니, 그들의 DNA에 벨트 매기는 들어 있지 않겠구나. 푸르공 뒷자리엔 아예 벨트도 없다.


에레데네트의 말고기


19시. 에르데네트의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 산길로, 강 위로 포장도로로 600Km를 주파했다. 울란바토르에서 홉스골까지 1,000Km가 넘으니 내일도 500Km는 가야 한다. 혹독한 거리이긴 하지만 가고 오는 모든 길이 구경거리. 잘 버티어주는 언니들이 고맙다. 그래서 제발 오늘은 가위바위보 하지 말고 조용한 방에 언니들을 묵게 해 드리자, 통과! 언니들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창밖으로 거대 불상이 보인다고 자랑하러 왔다.

어기는 씻지도 못하고 분주히 저녁상을 차린다. 호텔에서 레스토랑을 쓰도록 배려해주었고, 시어머니 남동생 집에서 공수한 말고기. 말은 더러운 물을 마시지 않고, 흐르는 강물만 마시는 똑똑하고 깨끗한 동물이고, 말고기의 성분은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몽골의 겨울 보양식. 사실 제주도에서 먹었던 말고기에 감탄을 하지 못했기에, 기대는 하지 않고 식사 자리에 앉았다.

이런 말고기 맛, 처음이닷!

정성스런 식탁 차림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말고기의 맛! 돌을 넣고 수육처럼 찌는 허르헉, 손님 접대용 최고의 요리라 했다. 어느 가이드가 이토록 정성스럽게 손님을 모실까! 고마움의 마음이 하늘로 솟구친다, 다른 할매들도 그런가 보다. 쇠고기 특유의 잡내가 전혀 없다. 담백하고 구수하다. 고기를 즐기지 않는 나조차도 자꾸자꾸 집어먹는다. ”암트타이(맛있어요)!“ 외삼촌도 잘 먹는 우리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띄고 있다. ”툴루우(건배)!“

22시. 말고기 만찬 후 모두들 금세 꿈나라로 떠난다. 호텔이 편안하긴 하지만 게르가 그립다. 장작 타는 소리, 나무 냄새, 그 소박하고도 야성적인 공기가 그립다.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섞이던 사람 냄새가 좋았다. 물 없어도, 세수를 못 해도,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며 함께 소변보던 시간이 절절히 그립다.

이번 여행이 심심하지 않은 이유는 수십 가지다. 사건, 사건, 사건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웃음들, 오고 가는 작은 사랑의 다툼들, 모두들 현금 없이 남이의 카드로 물건을 사는 시스템 때문에 밤마다 벌어지는 아수라장의 돈 계산...

몽골의 순박함과 순한 삶의 풍경들. 감동에 감동으로 젖어 들며 고운 심성들이 더욱 순화되는 과정. 참으로 고마운 여행길이다. 잠든 얼굴들을 면면히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우린 무슨 인연들이길래, 이렇게 만나 찬연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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