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전 날, 오후 세시 무렵.
해가 비치는 세상은 한창 노릇하기만 한 오후.
낯선 여인이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성큼성큼, 그녀는 나에게로 와서는 꽃 한 다발을 주었다.
"남편 분이 보내셨어요."
"네? 그럴 리가 없는데요?"
어안이 벙벙한 채, 서명을 했다. 그녀는 바람처럼 사라졌고 나는 동봉된 카드를 열어보았다. 과연 당신스러운 글귀가 쓰여 있었다.
당신은 본래 꽃선물에 인색하지 않았다. 졸업식, 청혼과 같이 기념이 될만한 날에는 내게 한아름의 꽃다발을 꼭 안겨주었다. 당신을 그리 만든 것은 순전히 내 탓이다.
왠지 나는 꽃 선물 받기가 어렵다. 아니, 부끄럽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특히 꽃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 꽃의 결말부터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어차피 너는 일시적일 뿐이고 곧 사라질 테니까. 너를 어떻게 해치워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몇 해 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 꽃다발을 들이미는 남편에게 어디서 얻어왔냐며 추궁을 했다.
"내가 산 거야."
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봐."
나는 좋고 부끄러운 마음을 짓궂게 풀어댔다. 남편은 내 모습에 실망을 했는지, 다시는 꽃선물을 하지 않겠다고 단언해 버렸다. 그 해 마지막 꽃다발은 외롭게 늙어버렸고 그것이 우리 집의 마지막 손님이었다.-마지막 손님이라고 믿었다.-
어쩌다 당신이 스스로 내뱉은 약속을 깨고 다시 꽃 선물을 했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최근에 근무지가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종종 그에게 어려움을 토로했다. 오빠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 틀리는 건 왜 그리 많은 걸까, 적응은 언제 되는 걸까... 등의 물음을 던지다가, 결국 일이랑 맞지 않는 것 같아라는 결말에 이르기 십상이었다. 남편은 그럴 때마다 그냥 들어줬다. 사람이 처음부터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어, 실수하면서 크는 거지. 라면서.
어쩌면 당신은 생일까지 사무실에서 울상으로 있을지도 모를 내게 왠지 힘을 실어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남편이'는 덤이었겠지. 실로 오랜만에 발동한 그만의 낭만이었다. 덕분에 나는 잠시나마 활짝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발길을 멈췄다. 완전히 혼자가 된 밤, 그 길가에 서서 나는 꽃다발 깊숙이 내 얼굴을 묻었다. 그가 선물한 향기가 콧속 깊숙이 파고들어 가서 온몸을 타고 흐를 수 있도록. 손목으로는 꽃다발을 살랑 흔들어보았다. 온갖 이파리들이 내 볼을 간지럽힐 때, 나는 그의 보들보들한 머리칼을 떠올렸다. 나는 그를 지척에 두고도 그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 회사 주소가 어떻게 되더라?
난 뭘 보내본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