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5월의 공원으로 간다. 우리 둘 중 누군가가 '우리 그때 진짜 웃겼어.'라는 말만 꺼내면, 나는 두 눈을 감고 그날로 다녀올 수 있다.
아끼는 동생 L과 실로 오랜만에 공원 나들이를 했다. 하늘도 우리의 만남을 축복해주려 했던 것 같다. 햇빛도 바람도 적당하여 나무랄 것이 없었다. 근처 카페에 들러 음료 하나씩 들고 이곳저곳을 거닐고자 했으나... 과연 얼마나 지났을까. 체력이 썩 좋지 못한 우리는 찰나만에 숲을 보지 못하게 됐다. 앉아야만 나무도 숲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며 금세 의자만 찾아댔다. 그 와중에 욕심은 또 많아서 눈에 풍광을 담아가겠다고 웬만한 자리는 마다했다. 그러다 L이 앞으로 손을 뻗었다.
"언니, 저기 의자 있다. 한번 가보자."
드디어 진정한 휴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굳게 믿고 다가갔다. 하지만 우리를 반겼던 것은 글쎄, 덩그러니 놓인 1인용 의자였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의자가 미아인 것은 확실했다. 테이블, 의자, 파라솔 같은 것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하다못해 바닥에는 못자국조차 없었다.
뜬금없이 고개를 내민 고독함 앞에서 우리는 당황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벙찐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깔깔 웃어버렸다. 우리는 누군가의 농간에 놀아났다며, 이건 좀 남겨둬야겠다며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한마디 보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지, 운명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쉽게 내어줄 리가 없잖아. 가혹한 운명이여, 몰아쳐라!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가 웃음기가 잦아들 무렵에야 우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 후로도 꽤 한참을 걷고 나서야 쉼터를 찾았다.
L은 고군분투 중이다. 최근에는 연락하기도 많이 어려워졌다.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나는 수도승의 마음으로 그 애의 안녕과 행복을 비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퍼뜩 생각났다. 유독 힘들었을 오늘의 그녀에게 이 지면을 빌려 한마디 해주는 것.
"우리는 잠시 5월에 다녀오자."
지금도 그러하겠으나, 앞으로도 우리는 원하는 것을 쉬이 얻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터무니없는 일들이 우리를 에워쌀 테지. 그럴 때마다 너와 나는 그날의 우리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 어처구니없음에 크게 웃어버리고는 한 발자국 내디뎌 보았던 우리를, 결국에는 둘이 앉기에 넉넉한 벤치를 찾아낸 우리를, 그리하여 낙낙해진 마음으로 오랫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던 우리를.
2023.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