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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Jan 30. 2024

2. 두 끼 짜리 저녁

이미 어둑해진 겨울 저녁에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수호랑, 반다비와의 짧은 인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버스를 타러 갔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바로 예약해 둔 메밀 김밥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포장마저 기다려야 하면 어떡하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식당을 찾아갔다. 이런 걸 기우라고 하는 걸까. 다행히 내 김밥은  예쁘게 포장 돼있었다. 아니 오히려 칭얼대는 것 같았다. 왜 이제 왔냐고, 혼자 기다리느라 외로워 죽는 줄 알았다고. 어르고 달래서 만난 김밥을 받고 나니, 나는 공복을 오래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택시로 빠르게 숙소로 향했다. 그 이후에도 한동안은 속전속결이었다. 도착, 체크인, 입실까지. 짐 풀 새도 없이-사실 짐이랄 것도 없었지만- 나는 젓가락을 빼들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충분히 알도록 했다. 오른손에는 젓가락을 쥐어주었고 왼손은 턱 아래 받치는 역할을 주었다. 행여라도 떨어지는 부스러기까지 입안으로 안착하게 하리라. 김밥을 오물오물 씹어보았다. 자칫하면 느끼할 뻔한 메밀과 새우튀김을 알싸한 고추냉이소스가 잡아주었다. 메밀이라 그런 걸까. 괜스레 건강한 맛이 느껴졌다. 허기가 진 탓인지, 고것이 요물이었는지. 자꾸만 입으로 들어가는데 아주 크게 혼났다. ‘하나만 더’와 ‘물회 먹으러 가자’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매번 나는 메밀 김밥에 졌다. 결국 김밥의 반을 먹어치웠다.-김밥을 남겨두었다가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 요량이었지만 예상보다 많이 먹은 터였다.- 그래도 행복한 패배였다. 어차피 내 배부르게 하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외투를 다시 여미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나는 매번 메밀 김밥에게 졌다. 그래도 행복했다.




나는 밤바람을 뚫고 강문해변을 타고 올라가 물횟집으로 갔다. 식당 안에는 서너테이블에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아주 구석진 곳으로 숨어들 듯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물회 1인상과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나만이 고요하고 나만이 말없는 조용한 식사를 하게 됐다. 보통 때였다면, 식사한답시고 에어팟이 선사하는 세상으로 도망갔을 것이다. 혼자 하는 식사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그랬다. 그러나 왠지 이곳에서는 그간의 습관을 다 깨보고 싶었다. 꺼내려던 에어팟을 다시 외투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었다. 온 감각으로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평소보다 귀와 눈이 심심해 보이는 식사가 되겠거니 넘겨짚었으나, 나름 재미있었다. 음식을 어러 번에 걸쳐 먹은 느낌이랄까. 코와 입을 통해서 느낀 풍미는 말할 필요도 없다. 눈으로는 음식의 색이나 모양이 주는 탐스러움을 보았고, 귀로는 신선한 재료가 선사하는 아삭함을 들었다. 게다가 내가 호로록, 후루룩 맛있게 내는 소리는 덤이었다. 오감으로 먹으니 오히려 물회가 더 새콤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래도 첫 도전에 온전히 성공할 수는 없는 법. 식사가 중반을 넘어갈 때 즈음, 외로움과 어색함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때, 친구와 가족에게 그 당시의 ‘현재’를 보내며 나의 근황을 전했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나의 여행을 좋아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강릉에서의 두 번째 끼니를 아주 맛있고 재밌게 마쳤다.

온전히 모든 감각을 동원했던 첫 식사.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조악한 불꽃이 피융, 피융 소리를 내며 치솟아 올랐다. 대개는 불타오르지 않았고 그나마 터진 것들도 매가리 없는 불빛을 내다 이내 사라졌다.

바다에서 폭죽을 터뜨릴 거냐고 물었던 동료 직원이 생각났다. 에이 무슨 폭죽이에요, 웃으며 넘겼었다. 그런데 정말 폭죽을 터뜨리는 사람이 있다니.

그걸 보고 있자니, 왠지, 하늘로 향하는 엉터리 꼬리별은 그 사람이 내게 보내준 쪽지 같았다.


여행 재밌게 하고 와요.


2023. 12. 7.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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