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서 휠체어에 이르기까지 제부에게 신세 진 우리 신세 이야기
우리 제부는 직업을 잘못 고른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여행 계획을 잘 짠다. 동생과 연애하던 시절부터 우리 가족의 여행계획을 짜주곤 했다. 심성이 어찌나 세심한지. 장모님의 산천어 축제에 가보고 싶단 말씀을 기억해 뒀다가 지난 1월에 화천 여행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성격은 또 어찌나 급한지. 후쿠오카라는 행선지가 결정된 후부터 동생네 부부는 며칠을 끙끙 앓아가면서 여행 계획을 짰다. 물론 필두에는 제부가 있었다. 본인은 일 때문에 여행에 참여하지도 못하면서, 본인의 일인 양 정성스럽게 빈칸을 그득하게 채워주었다. 그에 비해 나는 어찌나 간사한지. 계획은 얼마든지 추가하거나 수정할 수 있으니,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의견을 달라는 동생의 말을 듣기만 했다. 검색을 해볼라치면 게으름이 고개를 쳐들었다. 채워진 칸을 보니 그것이 순리 같았다. 결국 떠나기 전날이 될 때까지 내가 추천한 곳은 PT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야키니쿠 집, 단 한 곳뿐이었다.
여행 전, 그곳엘 가면 김치찌개가 그리울 거라는 친구의 말에 갑자기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졌다. 점심으로 찌개에 계란말이까지 야무지게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식곤증이 오기도 전에 남동생은 정신이 번뜩 뜨이는 비보를 보내주었다.
- 나 발목 돌아감.
내막을 들어보니 체육행사에서 2인3각하다가 다리가 돌아갔단다. (동생아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니.) 뼛조각이 날아가고 인대가 늘어났으니, 반깁스에 목발까지 짚고 다녀야 한단다. 심혈을 기울여온 여행에 차질이 생기자 나와 여동생은 분통을 터트렸다. 그 와중에 남동생은 패기만만.
- 잘 다닐 수 있어!
그의 여행에의 불타오르는 의지만 보일 뿐, 당장 내일이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제부의 위기 대처 능력은 빛을 발했다. 빨리 휠체어를 알아보라는 것. 나도 잠시 짬이 나던 차라 '항공사 휠체어'를 검색해 봤다. 과연 항공사마다 교통 약자들을 위한 휠체어 대여 시스템이 구비돼 있었다. 우리가 예매한 항공사의 콜센터 번호를 보내면서 동생에게 예약을 재촉했다. 그리하여 동생은 입국, 출국 시에 공항에서 휠체어를 빌릴 수 있게 됐다. 당장의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여행 1일 차. 새벽의 찬 기운을 뚫고 공항에서 가족을 만났다. 내가 새로 산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향한 곳은 단연 목발을 껴안은 남동생이었다. 녀석은 머리에 걸치고 있던 선글라스를 내려쓰고 다시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 기념이다. 인마. 나는 의기양양한 녀석의 모습을 찍는 것으로 우리 가족과 새 카메라의 첫 만남을 마쳤다. 잠시 후, 체크인 카운터가 열렸다. 나와 남동생은 교통약자 대기열로 갔다. 우리의 행로는 게이트 앞까지는 나름 순조로웠다. 교통 약자와 함께하다 보니 1등이란 걸 해볼 수 있더라. 수하물 붙이기, 보안 검색, 출국심사를 거쳐 탑승 게이트 앞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이제 가족들과 만나서 비행기에 몸만 실으면 된다. 실으면 되는데....
지면을 빌려 제부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해본다.
덕분에 즐거운 추억 하나 얻었어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