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
간식 기행을 마치고 숙소로 왔다. 방의 이름은 '화의(花衣) '. 어릴 적 우리 가족이 살았던 빌라보다도 넓었다. 우리는 짐을 한쪽으로 몰아놓았다. 그러고 나서 베란다에 비치된 소파에 앉았다. 화폭에 담긴 듯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나뭇가지는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렸다. 새들은 여기저기서 지저귀었다. 평화로웠다. 방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부산스러웠던 내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사진으로 남기기엔 아쉬울 것 같아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짤막한 영상을 남겼다.
바람과 새가 만드는 소리를 듣다가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남동생은 온천 놀음, 아빠는 산책 놀음을 끝내고 오셨다. 여동생이 말했다.
- 자 이제 내려가 볼까.
가이세키를 미리예약해 두었다더니, 상이 거하게 차려져 있었다. 내 앞에 고기, 생선, 국 등이 정갈히 놓여 있었다. 차려져 있는 것도 모자라 직원분들이 추가로 음식을 날라다 주었다. 식은 도시락과 간식으로만 달랬던 배때기에 내리는 호사였다. 혼란 속에서 '뭐부터 먹어야 하나?' 망설이다가, 나는 젓가락의 부름에 응하기로 했다. 음식의 간이 알맞고 내 입맛엔 좋기만 하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소고기, 생선 말고는 음식의 이름을 몰라 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는, 그것은 코스의 끝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마지막 음식으로 보이는 음식까지 먹고 일어났다. 우리를 눈여겨본 직원이 다급한 표정으로 길을 막아섰다. 그녀는 마치 탐정 같았다.
- Finish?
- Yes!
직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빈 그릇을 감식했다. 현장을 찬찬히 살피더니 외쳤다.
- You don't finish desert!
그녀는 다시 돌아가라고 일러주었다. 우리는 머쓱하게 돌아왔다. 우리는 자리에 앉기 전까지 뭐지, 뭘까 하며 숙덕댔다. 곧 복병 다섯 접시가 우리 상 위로 올라왔다. 과일과 녹차였다. 열없이 달콤함과 씁쓸함을 오가며 방황 끝에 저녁 식사를 마쳤다.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는 온천이었다. 내려가니 이제 막 목욕을 마치고 나가는 중년의 여성뿐이었다. 곧 여탕엔 엄마와 두 자매만 남았다. 너무 뜨겁거나 더울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모두가 만족스러워했다. 노천이어서 물 밖은 시원하고 물 안은 적당히 뜨끈했다. 제법 오래 있을 만했다. 게다가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데에는 온천만 한 게 없더라. 특히 남동생의 발목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나는 우스갯소리로 이건 부모님 효도 여행이 아니라 남동생 휴양이라 칭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남동생은 온천욕만 하루에 두 탕이나 뛰었다. 과언이 아니었다.) 짧은 듯 긴 듯한 온천욕을 마치고 우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방 한가운 데에 자리 잡고 있던 테이블이 옆으로 치워지고 두툼한 이불이 깔려있었다. 나는 이불 한 귀퉁이를 살짝 갰다. 나는 그 바닥에 자리 잡고 앉아서 맥주를 마셨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가족과 함께 보면서 여행했던 곳곳을 곱씹어 보았다. 그러다 나는 문득 '그 장면'을 떠올렸다.
'우리 가족 여행'을 생각하면, 내가 꼭 떠올리는 모습이 하나 있다. 어느 때인지, 어디인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아무 길바닥 갓길에 차를 대고 라면을 끓여 먹는 우리 다섯 명이 있다. 바람이 불어서 자꾸 버너의 불은 꺼진다. 땅바닥은 고르지 않아 앉아있자니 엉덩이가 아프다.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 후, 후 불면서 라면을 먹었던 기억. 이건 유년기의 우리 다섯만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다.
피식, 웃으며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먼 훗날의 나는 왠지 이번 여행을 ‘갓길에서의 라면’만큼 사랑하고 돌아볼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단정 짓기에 이르다.
하긴.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