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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Jul 03. 2024

9. 후쿠오카 여행기의 문을 닫으며

여행 마무리 이야기.

여행 마지막 날에도 나는 단잠을 잤다. 코도 골았던 것 같다. 남동생 덕분이라면 덕분이랄까. 잠귀에 예민한 내가 숙면이란 걸 해내다니. 정말 별일이었다.

일어나서 눈곱을 떼자마자 만찬장으로 내려갔다. 어제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정갈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내 앞에 앉은 남동생은 음식을 정밀하게 조사하고는 한마디 했다.

 - 녹차가 나와있네. 이번엔 디저트까지 다 나온 게 분명해.

그의 말을 따라 음식을 둘러보니, 요구르트도 보였다. 그래, 이번에 네 덕분에 실수는 덜겠다며 웃었다. 젓가락 포장지를 뜯었다. 식사를 하자니 아까웠다. 음식을 쪼개고 쪼개가며 조금씩 먹었다. 반 정도 먹었을까. 남동생이 갑자기 카메라를 달란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녀석의 식사는 끝이 났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 내 빈 그릇이 너무 예뻐 보여서 이건 사진으로 남겨야겠어!

- 그래, 옜다!

나는 순순히 물건을 넘기고 이내 먹는 것에 집중했다.

얼마나 예쁘냐며 빈 그릇 사진을 남긴 녀석. 놀랍지 않게도 여행 내내 그의 그릇은 저렇게 비어있었다.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단장을 했다. 우리는 기차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서둘러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목적은 단 하나, 역 앞에서의 화보 촬영! 거리 위에는 우리 가족뿐이었다. 내친김에 우리는 크게 둘러보기로 했다. 발 가는 데로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모든 곳이 배경이었고 우리 가족이 나의 모델이었다. 온전히 도시와 사람을 담아내기엔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왼쪽 눈을 하도 감아서 얼굴 한쪽이 아렸다. 그래도 렌즈의 뚜껑을 덮을 수 없었다. 나는 즐거운 발악을 펼쳤다.

고즈넉함이 물씬 풍기는 유후인 역 밖과 안

알맞은 시각에 역으로 돌아왔다. 아까와 달리 출발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줄을 서서 차분히 기다렸다. 탑승시간이 되었고 개찰구가 열렸다. 오래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나는 여동생과 나란히 앉아 여행을 복기해 보았다. 무엇이 맛있었는지, 어디가 좋았었는지를 공유했다. 그렇게 나눈 이야기들은 자연 스러이 지금의 이 여행기의 뼈대가 돼 주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지도를 보지 않고도 휠체어 대여소를 찾아갈 수 있었다. 젊은 남성 둘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덕분에 편하게 여행했다는, 고마웠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국제선 출국장으로 갔다. 수속을 밟으며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휠체어를 받았다. 동생을 세 번째 휠체어에 태웠다. 출발했을 때처럼 녀석을 따라 교통 약자 서비스를 받았다. 모든 게 유유히 흘러갔다. 비행기를 탔고 우리는 인천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행을 마무리해 본다.

먼저 부모님에게 감사하다. 우리 남매가 우리 마음대로 효도여행이라고 명명하였으나, 당신들께는 자식들 비위 맞추기 여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마친 후, 엄마께 누구와의 여행이 제일 좋으냐고 여쭸다. 엄마는 당연히 친구와의 여행이 더 재밌다며, 다음을 너희와 기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그러실 만하다. 돌이켜보면 우리 남매는 적어도 한 번 이상 돌아가며 언성을 높였다. 그때 부려버린 짜증을 생각하니 부모님께 죄송할 따름이다. 엄마께 다음이라는 기회를 한번 더 받고 싶다.(아빠는 가족 여행 제안에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히 '응'이라고 대답하셨다.)


남동생에게 고맙다. 여행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 어쩌면 제일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여행 첫날터 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짐꾼이 짐이 되면 어떡하냐.

그 말씀은 여행 내내 그를 옭아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잘 참아냈다. 짧은 거리나 버스를 타야 할 때는 꼭 저와 비슷한 처지인 목발을 꺼내 들었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할 땐 짐꾼을 자처하였다. 내 가방과 카메라를 전담마크 해줬다. 지도도 꼼꼼히 잘 봐주었다. 덕분에 헛걸음하지 않았다. 그 나름의 방식대로 몫을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 여행에선 멀쩡한 두 발로 사방팔방 다녔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동생에게 제일 많이 고맙다. 그녀가 이 여행의 시작과 끝을 만들었다는 말이 넘치지 않는다. 그녀는 나만 생각했던 쉼의 크기를 키워주었다. 제부와 함께 머리를 끙끙 싸매며 여행 일정을 짰다. 여행 중에는 제일 중요한 일정과 회계를 담당했다. 그뿐인가. 우리나라로 돌아와서까지 운전대를 잡았다. 그녀는 여행을 제일 먼저 시작해서 제일 마지막에 끝냈다. 이번 여행이 이토록 풍성해진 데에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의 공이 크다. 다음엔 꼭 그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


여행 내내 변수가 우리 가족의 앞통수와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렸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여행이 무척 좋다. 그곳에 우리만의 서사를 살포시 덮었으니까. 벌써 우리는 여행을 추억하며 웃는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영상이다. SNS에서 쉬이 볼 수 있는 짤막한 영상. 방문하는 곳곳마다 같은 자세를 취하여 우리 가족만의 흔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남동생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뒤늦게나마 해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그래서 '하다 만' NG 영상만 남게 되었다. 많이 아쉽다.


우리가 다시 여행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우리, 여행 갈래?

모두 고생했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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