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여느 아침과 똑같았다.
나오던 때에 집을 나왔다. 매월 있었던 일정대로 움직였다. 회의가 있었기에 몸을 바삐 놀렸다. 지하 회의실과 1층 사무실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저 그런 보통날이었다. 시곗바늘이 오전 아홉 시 15분을 가리키기 전까지는. 진동이 울렸다. 휴대전화를 보니, 너의 동생으로부터 온 문자였다. 너의 이름 앞에 故가 붙어있었다. 부고장이었다. 사무실 한복판에서 나도 몰래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생각나는 사람이 우리 모임의 맏언니였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떡해, 어떡해! 언니는 차분하게 말했다.
"진정해. 조금 진정하자."
일단 전화를 끊었다. 모임 단톡방에 부고 소식을 알렸다. 만날 시간을 조율했다. 우리는 퇴근 후에 장례식장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이후, 마음 가눌 길이 없었다. 자리를 떠나 일어나면 나을까 싶어 사무실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돌이켜보면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마우스를 잡긴 잡았는데, 자판을 두드리긴 두드렸는데 뭘 했는지 모든 게 희미하다. 울다 웃기만 한 게 기억난다. 머리가 고장 날 법도 했다. 뭉근한 두통이 왔다. 종일 나를 괴롭히던 놈은 퇴근 때가 되어서야 겨우 가셨다.
내가 나오면서 인사를 했던가. 그저 버스정류장으로 내달렸다. 마음이 바빴다. 안 그래도 서둘러 오고 있는 동기를 독촉했다. 만나자마자 짧은 인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탔다. 대화를 잠깐씩 나눴지만, 우리 사이에는 가끔 적막이 돌았다.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을 뿐, 우리는 공백을 메우려 노력하지 않았다. 애쓰지 않게 해 준 서로의 배려에 고마웠다. 실수로 한 정거장 일찍 내렸다. 상관없었다. 우리는 터덜터덜 걸었다. 곧 장례식장 앞에서 나머지 사람들과 합류했다.
장례식장 로비에 들어가서 봉투를 찾았다. 그 안에 조의금을 넣었다. 봉투 위에 내 이름을 썼다. 부의함에 봉투를 넣었다. 방명록에 이름을 적었다. 하루의 끝에 다다라 너를 만났다. 석 달 전에 온몸이 바스러져라 부둥켜안았었던 너를. 눈물이 앞을 가려 너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두 번 절을 올렸다. 어머님은 몸을 가누지 못하시고 울고 계셨다. 같이 울었다. 우리는 겨우 너의 동생과 맞절하고 나왔다. 식탁에 앉았다. 여사님들께서 내어주신 따뜻한 밥상을 받고도 한참을 울었다. 밥을 내가 어떻게 먹느냐란 생각이 스멀스멀 들 때쯤, 너를 무척 아끼던 선배님이 말씀하셨다.
"고인과 함께하는 마지막 밥상이니 맛있게 먹어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네가 그리 좋아하던 밥, 맛나게 먹었던 밥을 생각했다. 너와 함께하는 마지막 밥상. 맛있게 먹어야지. 그럼. 나는 코를 탱 풀고는 한술 떠먹었다. 밥도, 국도, 반찬까지 맛있더라. 꿀떡꿀떡 잘만 들어가더라. 네가 참 좋아할 밥상이었다. 나는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먹었다. 먹다 보니 기분이 차차 나아졌다.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눴다. 너를 추억했다. 그릇을 비워냈을 즈음이었을까, 너의 어머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어머님은 진정이 된 얼굴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나는 어머님을 뵙자마자 덥석 손부터 잡았다. 어머님은 너의 말을 옮겨주셨다.
"우리 아이가 언니들을 너무 좋아했어요. 좋은 언니들이라고. 고마워요. 우리 아이에게 너무 잘해주고 힘써줘서 정말 고마워요."
"아니에요, 그 친구가 우리한테 너무 잘했어요"
나는 모든 것이 너의 덕분이라는 말씀만 연신 드렸다. 덕담을 이어가시던 어머님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셨다. 네가 그 선배님에게 남긴 말이 있는데 얼굴을 모르겠다고, 알려줄 수 있냐고 하셨다. 나는 냉큼 일어났다. 이 자리에 함께 계세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하고는 쪼르르 달려가 알려드렸다. 선배님이 나간 자리에 잠시 앉아 네가 남긴 말을 전달해 주었다. 우리한테 참 고마웠다고 그랬대. 나는 또 훌쩍거렸다.
너의 뜻을 전달하고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얼마 후, 한두 사람씩 떠나갔다. 조심히 가시라 인사했다. 나를 포함한 몇몇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 남았다. 어느덧 밤 열 시를 훌쩍 넘겼다. 슬슬 일어나 보려는데 언니가 말했다.
"우리, 한 번 더 인사하고 가자."
언니는 향도 피워주었다. 언니의 큰마음이 고마웠다. 덕분에 그제야 너를 마주한 채로 인사할 수 있었다. 꽃같이 예쁜 아이야. 넌 지금 어디에 있을까. 홀로 가는 길이 춥거나 무섭지 않을까. 쥐뿔도 없는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 부처님이 들어주실까.
부디 우리 동생 끝까지 지켜주세요.
다음날은 공휴일이었다. 하려던 일을 모두 미뤘다. 시간이 맞는 친구들과 만났다. 다시 너를 찾았다. 연도(煉禱)가 한창이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입관식이 예정보다 30분이 당겨졌단다. 가족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자리를 지켜드리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시간쯤 흘렀다. 너의 동생이 돌아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어제 상주 노릇 하느라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했을 너의 동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곧이어 문소리가 들렸다. 너의 동생은 휴게실로 들어간 듯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머님이 보였다. 나는 친구들에게 '인사드리고 가자.' 하고는 무겁게 일어났다.
어머니는 한결 편해지신 얼굴로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떠나기 전에 어머님과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너의 마지막을 말씀해 주셨다. 어머니는 그간 네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찡그리고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너는 '내 딸아, 잘 가.'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인사에 너는 살짝 웃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숨이 멎었다고 했다. 너는 엄마의 인사까지 기다려준, 마지막까지 착한 아이였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조그만 아이가 사람 부자가 되었다고, 찾아와 준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하셨다. 계속 고맙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제는 나만 남아서 1이 지워지지 않을 우리의 공간에.
-너에게 인사하고 돌아가는 길이야. 착한 우리 동생아,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지내고 있어!
그날은 이제 더 이상 똑같지 않을 거다. 남겨진 우리에게는.
안녕, 안녕. 나의 세라피나.
2024. 10. 9.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