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재미를 붙여갈 무렵에 "좋은 생각"에 기고했던 글이다.
지면이 좁았던 탓에 전문을 실을 수 없었는데 묵히기에 아까워 남겨보는 글-.
풀과 꽃이 돋아나긴 했지만, 아직 완연한 봄이라기엔 살짝 이른 지난밤. 그 간밤에 비가 내리고 나서 날씨가 차졌다. 이런 날은 만사 제치고 공원으로 나가야 하는데. 오늘이 금요일이라니. 나는 힘겹게 마음을 접은 뒤,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비가 오는 중이거나 비가 온 직후에는 무작정 공원엘 가야 한다. 텅 빈 공원을 혼자 걷고 있노라면 이 세상이 모두 내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거기에 배경음악은 또 어떤가. 독, 독, 도도독. 우산과 땅으로 내려와 반가이 인사하는 빗방울 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뿐인가. 짙어져만 가는 연둣빛 풀내음은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되었음에도, 나는 전방을 살피며 온전히 혼자임을 재차 확인한다. 그러고 나선, 홀로 마스크를 목 아래로 마스크를 죽 내린다.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하, 드디어 나는 온몸으로 계절을 느끼고야 마는 것이다.
비맞이를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 몇 해 전, 어느 늦은 여름날의 일이다. 나는 남편과 심한 다툼을 했다. 원인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나는 그 무엇엔가 너무 화가 났다. 분출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손에 잡히는 기다란 우산 하나를 집어 들고 나는 무작정 밖을 나섰다. 막상 나오고 나니 갈만한 곳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카페에 마냥 앉아있자니 왠지 분이 쉬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걷기로 했다. 다행히 집 주변에 큰 호수 공원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늦장마였다. 바람을 따라 대중없이 흩뿌려지는 비를 맞았다. 신발은 이미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젖어 있었다. 우산은 머리만 보호할 뿐,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돌자. 처음엔 앞만 보고 무작정 걸었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 무엇이 있는지 개의치 않았다. 모든 분노를 내 한걸음, 한걸음에 담아 쿵쾅쿵쾅 걸을 뿐이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쯤 걸었을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노여웠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공원을 조망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해바라기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이. 그간 보아왔던 녀석이 아니었다. 녀석은 자신의 사랑, 해님을 잃고 지향 없이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머리에는 한껏 물을 머금은 채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시련을 겪은 사람처럼 이파리 한 깃마저 힘이 없었다. 해바라기가 꼭 나 같았다. 너는 꼭, 정처 없이 분풀이만 하는 나 같구나. 나는 어느덧 그렇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묘한 동질감을 느끼다가 조금은 숙연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나는 비 오는 날을 또 맞이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공원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고는 지난번처럼 한동안 해바라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 비 오는 날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날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날 중에 하루가 되었다.
얼마 전, 나는 드디어 장화를 샀다. 벼르고 별렀던 것이었다. 나는 장화를 사자마자 남편에게 제일 먼저 자랑을 했다. 왜 샀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너무 당연하게 “왜긴 왜야, 비 오는 날 걸으려고 샀지.” 하고 말했다. 남편은 장화를 자랑하던 내게 청승을 떤다는 말을 남겼다. 어떤 사람에게는 환대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핀잔을 받은 나의 장화. 지금까지 내가 그 장화를 신고 빗길을 걸은 적은 아쉽게도 딱 한 번이다. 그날에 나는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장화가 지닌 우수성에 대해 자랑했다. 남편은 엉뚱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영영 나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내 소우주에선 비가 선물과 같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