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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Jan 01. 2023

02. 반려견, 가을이

2021년 시월의 어느 월요일, 그날은 유난스레 추웠다. 뉴스에서는 11년 만의 가을 한파라 했다. 옷을 단단히 여미고 현관문을 열었다. 가을인데 가을이 없네. 한참을 그리 생각하고 있는 출근길에, 나는 어떤 여성이 강아지와 산책하러 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다시 읊조렸다. 가을인데, 가을이 없네. 찔끔 눈물이 새어 나오고야 말았다.




가을이는 시부모님이 키우던 시츄의 이름이었다. 이름은 아버님이 붙여주셨는데, 그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그 녀석이 ‘가을’에 왔기 때문이었다.


반려동물은 주인을 닮는다더니, 녀석은 특히 작은 형(우리 남편)을 많이 닮았다.

녀석은 먹는 것을 무지하게 밝혔다. 식사 시간이면 어김없이 제 엄마와 아빠의 옆자리로 가서 애절한 눈빛을 쏘았다. 시부모님의 마음이 약해지기 일쑤였다. 녀석은 어떻게든 고기 한 점은 얻어먹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명절에 차례상을 준비할 때였다. 부지불식간에 녀석은 상 위에 올라온 황태포를 물고 안방으로 도망쳤다. ‘너에게도 순발력이라는 게 있구나!’ 하면서 모두가 웃었다. 당시 녀석의 움직임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어찌나 날랬던지.


녀석은 영악하기도 했다. 어느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내외가 시댁으로 간 적이 있었다. 집안 곳곳에 냉기가 스며든 것 같았다. 녀석도 솜옷을 입어가며 무장한 것 같았지만 추워하는 게 보였다. 으슬으슬 떨면서 내가 소파에 앉았다.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옆으로 와서는, 그의 엉덩이를 내 허벅지에 딱 붙였다. 녀석의 오들오들한 진동이 내 다리를 넘어 가슴속 깊이까지 밀려왔다. 평소에는 나한테 곁을 내어주지도 않았던 도도한 아이가 내 체온을 노나 가지려고 하다니. 녀석이 귀여웠다. 한편으로는, ‘고놈 참 맹랑하구나!’ 했었다.


가을이는 우리 가족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14년을 보냈다. 녀석은 주인어른의 두 아들이 연애하고 출가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첫 손주가 조리원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날, 본인의 자리를 손주에게 내어주었다. 그렇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가을이가 떠나고 처음 맞이한 주말 저녁, 우리는 피자를 먹었다. 한 조각을 들어 올리려는데 남편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가을이 죽었대.”

  “왜? 어쩌다가? 어떻게?”

  “모르겠어.”

무미건조한 그의 대답. 당신은 지난 추석에도 힘없이 축 늘어진 녀석을 보면서도, ‘내년 설은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툭 던졌지. 나는 어색해진 공기가 싫어 생각나는 말을 내뱉었다.

  “오빠,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거기에서 주인이 올 때까지 주인을 기다린대.”

  “흑흑...”

내가 말을 마쳤을 때, 남편은 피자 한 입을 베어 물다 말고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잠시 놀랐다가 이내 같이 울어버리고 말았다.

  “오빠, 울지 마. 가을이 좋은 데 갔을 거야.”

  “아버지께 이야기 들었을 때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남편은 아이같이 울먹이면서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신의 아버지 앞에서 괜찮은 척했다 해도 더는 어쩔 수 없었으리라. 가을이었으니까.

  "아, 못 먹겠다."

그렇게 먹는 것에 있어 빼지 않던 남편은 피자를 마저 먹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다.

어른이 되었을 소년이 가슴으로 품었을 분홍 스웨터를.

나는 또 생각해 보았다.

가을이가 입었던 해진 겨울 솜옷을.

잔망스러운 것,

잔망스러운 것...


눈물이 쉬이 그치지 않았다. 홀로 안방에 들어와 울면서 탱탱 코를 풀고 있는데 먼저 침착을 되찾은 남편이 감기에 걸렸냐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가을이 궁둥이가 떠오른다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남편은 아무런 말없이 한참 동안 나를 안아주었다.     


가을아,

너는 강아지를 무척이나 두려워하던 나를 보고 처음으로 짖지 않았던 아이였다.

너는 내 생애 처음으로 산책을 같이해 본 아이였다, 체온을 노나 본 아이였다.

너는 내 생애 모르고 살았을 사랑을 깨닫게 해 준 아이였다.     

가을에 와서 가을에 떠난 아이야, 선물 같은 아이야.

먼 곳에서 우리 가족을 잘 지켜 봐줘.

고마웠어.

안녕, 가을아



덧 1, 남편은 그날 밤 배가 고프다며 피자를 데워 먹었다.

후후, 입김을 불어가며 먹는 당신을 보면서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당신을 똑 닮은 가을인 당신을 이해할 거야.


남편의 휴대폰에  사진으로 남은 아이. 따로 남겨주지 못해 참 미안하다.


덧 2, 남편과 가을이 사진을 좀 찍어줄걸.

내심 아쉽다. 참 예쁜 아이였는데 같이 찍은 사진 하나 없는 게 남편에게도 가을이에게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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