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선택장애
식당에 도착했을 때, 상대는 물었다.
"뭐 먹고 싶어?"
나는 평소처럼 대답했다.
"아무거나 괜찮아."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가 잠깐 한숨을 내쉬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그 순간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나는 진심이었다. 정말 뭐든 잘 먹고, 못 먹는 음식도 없다. 솔직히 말하면, 상대가 원하는 걸 먹으면 나도 마음이 편했다. 그 사람이 편하게 느끼면, 나도 괜찮아지는 사람. 그게 나의 오랜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선택의 기회를 넘겨왔고,
어느새 그게 익숙한 관계의 언어가 되었다.
그날 나는 조금 더 말을 덧붙였다.
"나 진짜 뭐든 괜찮아. 선택장애도 있고... 다 좋아."
그러자 상대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건 결국 책임을 타인에게 넘기는 거야."
그 말이 꽤 오래 마음속에 남았다.
그 순간, 나는 살짝 당황했고 조금 서운했다. 나의 진심이 '책임 회피'라는 말로 단정되는 느낌이 낯설고 이상했다. 그제야 알았다. 같은 말도, 듣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었는데. 정말로 타인의 기분을 먼저 배려하는 습관이었는데, 그걸 '책임 회피'로 해석한 사람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뒤로, 내가 수없이 내뱉었던 "괜찮아"라는 말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의사소통 전문가들은 '나-메시지(I-Message)'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한다. "나는 이것을 원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취향 표현을 넘어 건강한 자기 주장의 형태이며, 관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행동이라고 한다.
상대방은 '아무거나 괜찮아'라는 애매한 대답보다, 솔직한 선호와 의견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읽게 된 글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건 자율성과 자존감을 회복하는 중요한 심리 작용이다."
말하는 것. 선택하는 것. 내가 원하는 걸 이야기하는 건 단지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존중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그 사소한 선택 하나가, 자기를 지켜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조금씩 변하려 한다. "아무거나"라는 모호한 대답 대신, "이 두 가지 중에 어떤 게 좋을까요?"라고 선택지를 제안하거나, 가끔은 "오늘은 파스타가 당기네요"라고 솔직히 말해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를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나가려 한다. 여전히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되, 나의 목소리도 함께 내는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다.
나는 여전히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고, 그게 나답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제는 배려와 자기표현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사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무엇이든 괜찮다고 말하는 내 안에도, 귀 기울여 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