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을 '개그맨' 혹은 '광대'로 표현한다. 이는 종종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곤 하지만, 대부분은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대게 어떠한 사람의 행동이나 언변이 가볍게 느껴질 때 우리는 코미디언 같다고 표현한다. 예로부터 광대라는 직업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고마운 직업이나, 이를 천한 직업이라고 여겼다. 오늘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재밌는 사람. 가벼운 사람의 칭호를 쓰고 있다. 삶을 살아가며 주변인들에게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때때로 들은 기억이 있다. 그들은 분명 좋은 뜻에서 이야기를 한 것임에 틀림없다. 나 또한 개그맨 혹은 광대 같다는 표현에 크게 불쾌함을 느낀 적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코미디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 그리고 단체 혹은 조직에서 타인을 즐겁게 해주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재미있지만 가벼운 사람'의 이미지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들의 삶을 전적으로 이해해 본 적이 없을 것이며,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행위나 말들은 그들의 직업이기 때문에. 그것이 그들의 역할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의 깊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직업 중 코미디언 (통칭 '개그맨')이 가장 많은 희생을 강요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타인의 웃음을 위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누군가를 웃게 만들기 위하여 자신의 추태를 내비칠 필요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다름 아닌 '용기'이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용기가 있는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할 것이다. 용기가 가장 쉬울 때는 말로 용기를 표현할 때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 용기의 정의를 입으로 표현하는 것이 용기를 직접 실현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쉬울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어 다른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 이것이 바로 훌륭한 용기이자 희생일 것이다.
또한, 그들은 대중이 대체로 납득할 만한 웃음거리를 만들지 못하게 될 경우 온갖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직업의 특성상 자신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한다면 비난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웃음, 즉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절대적일 수 있는가. 보편타당한 감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감정이란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까. 즐겁다는 감정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루한 순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코미디언들은 어쩔 수 없이 독이 든 성배를 마실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자신들이 즐거움을 주는 대상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웃으며 또다시 누군가를 웃게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숙명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코미디언이다.
다양한 모습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진정으로 그들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궁금해한 이가 있을까. 내가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이유는 다른 모습을 연기하며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어야 한다는 것. 일반적인 배우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모습일 것이 분명하다. 어떤 상황 속 인물에 투영되어 몰입하는 배우들과는 사뭇 다르게 이들은 몰입과 동시에 누군가를 웃음 짓게 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다. 여러 가지 가면을 쓰는 것은 본질적인 '나' 자신에 대하여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상황에 마주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늘 웃어야 한다. 누군가를 웃음 짓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가 웃음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웃을 수 없는 상황에도 웃어야 하는 이들의 처지를 어찌 누가 가볍게 여길 수 있겠는가. 즐거움, 웃음의 감정을 온전하게 즐기지 못하는 그들은 과연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매체 혹은 미디어 속의 누군가, 그러한 코미디언들을 보며 웃음 짓곤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미소는 전파되어 많은 이를 즐겁게 한다. 이러한 그들의 자기희생이 있기에 세상에는 그래도 웃을 일들이 참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낮추고 희화화하며 타인 앞에 자신의 가장 익살스러운 모습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그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볍게 여겨질 인물들이 아닌, 누구보다 진정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 (특히, 내 주변인들)을 웃게 만들고 싶다. 나는 그 누구보다 성공이라는 것에 목말라한다. 누구보다 멋진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미래의 모습에 너무나도 갈망하고 있다. 내가 성공하고자 하는 이유는 내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맞서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좋은 모습, 멋진 모습이 아니어도, 그 누구보다 추한 모습으로 웃기고 가벼운 대상으로 보일지라도 그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싶다. 가볍고 웃긴 사람으로만 여겨질지라도 본질은 묵직하고 책임감 있는, 많은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내 주변 내 사람들이 나의 겉모습만으로 나를 판단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그들 눈에 광대 혹은 코미디언일지라도, 그들은 진정한 내 모습을 바라봐 주리라 믿는다. 나에게 웃음을 준 그들처럼 나도 코미디언의 삶을 살고자 한다. 용기 있는 희생으로 그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나는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울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