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노 Apr 12. 2024

과거 미화, 그리고 행복

:re (시간 여행)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참 많이 듣곤 한다. 나도 물론 종종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Y2K, 레트로가 유행하는 요즘 더욱 그러한 말들이 자주 들리는 것 같다. 많은 사람에게 묻고 싶다. 그 시절 자체가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현재보다 어린 그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두 가지 모두 그리운 것인지.

인생이란 그래프는 늘 한결같이 않다. 특정 순간에는 과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며, 반대로 그 무엇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 추락한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굴곡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우리는 평탄하지 못했던 과거를 평균적으로 좋게 여기곤 한다. 힘들었던 일은 경험 혹은 그저 지나간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기곤 한다. 물론, 정말 힘들었던 과거를 뒤로 한 누군가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일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작년 초 그 누구보다도 힘들 시절을 겪은 경험이 있다. 정말 눈에 뵈는 것 없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만 느껴져 왔고, 삶의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던 순간이 있다. 그러나, 정확히 1년쯤 지난 지금에서 작년의 그 힘든 시기를 되돌아본다면, 그때의 힘듦과 절망이 고스란히 전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좋았던 기억은 더 좋은 기억으로 변모되고, 힘들고 아팠던 순간들은 과거의 나, 어린 시절 내가 겪은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 '야 그땐 그랬지.'라며 깊은 한숨과 한 모금의 담배 연기에 고통스러웠던 그날의 상처를 가벼운 바람에 실어 보내는 것. 굉장히 어려워 보일 것 같은 이러한 일들은 실제로 참 많이 일어난다. 지금 나는 결코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일을 소주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에 날려버리는 어떤 가장의 모습은 고됨을 삼켜내는 것이 어른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늘 '그때가 좋았지.'라며 회상하는 우리들은 사실 언제나 행복한 것이 아닐까. 대학생 신분이자 곧 입대를 앞둔 나도 특정 시기가 지날 때마다 '중학생 때가 좋았지, 고등학생 때가 최고야, 신입생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등 과거를 참 많이 회상하곤 한다. 특히, 요즘은 그런 생각을 더더욱 많이 하곤 한다. 내가 기억하기론 손에 꼽는 힘든 일들이 참 많이 있었을 터, 적장 그 순간의 냄새까지 명확하게 기억하는 사건은 그다지 없는 것 같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그날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강해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때 보다 한 층 두터워졌으므로 다소 견디기 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반대로, 지금 그러한 일들은 떠올린다고 할지라도 당장 겪고 있는 일이 아니기에 전보다 편한 감정이 드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것. 그날의 나의 선택을 후회한다 할지라도 돌아올 수 없는, 지나간 시간임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겪은 과거의 크기를 보다 얇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종종 이런 질문들이 들어온 적이 있다. '너는 지금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래?'라고 말이다. 예전의 나는 과거의 나의 후회나 실수 혹은 미련으로 인해 특정 시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그러한 질문이 다시 찾아온다면, 나는 '오늘의 나로 살고 싶어.'라고 답할 것이다.


 과거의 어떤 힘든 일이 있었던, 어떤 어려움에 고전하였던 상관없이 난 그날의 나를 믿어주고 싶다. 과거의 나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무언가 일이 잘 못 진행되었음을 깨닫고 있는 지금도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바보 같은 선택을 한 적도 있을 것이지만, 대부분은 실수에서 나온 일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 그러한 실수를 바로잡기보다는 오늘의 나로서 하루를 살아가고 싶은 이유는 그러한 실수가 오늘까지의 긍정적인 나의 모습에 영향을 준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며, 그 실수가 결과론적으로는 다른 선택들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어떤 경우의 수를 결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굉장히 많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 학창 시절 학교를 잘 못 선택한 것 등등. 그러나 그러한 아쉬운 과거의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오늘날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성장과 깨달음은 실패와 미숙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미숙함은 당연한 것이고, 그런 특유의 미숙함을 바탕으로 나는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느낄 정도로. 또한, 아쉬운 일이 있었기에 더 잘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더 좋은 학교를 가고 싶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러하지 못했다. 반수나 재수 등의 방법이 있었지만, 나는 주어진 결과에 승복하였다. 현재 상황에 안주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처한 환경을 극복하고 싶었다. 지금 내 상황에서 내가 원래 얻고자 했던 것의 이상을 쟁취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러한 결과를 일부 손에 넣었다.


 돌아보면 내 과거는 생각보다 참 따뜻했던 것 같다. 단순 미화가 아니라 정말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날에는 내 곁에 항상 사람들이 있었고, 좋지 못한 날에는 사람이 더더욱 많았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기쁜 순간과 어려운 순간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오로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결한 순간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 내 지나간 순간을 바꾼다는 것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독단적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의 끝은 좋지 못함을 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시간 여행을 한다면, 나는 과거보다는 미래를 체험하고 싶다. 미래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내 주변인들의 모습이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 힘든 일이 없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할 테니. 다만 어떤 어려움이 찾아온다 한들 나를 포함한 그 사람들이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만 굳세게 버티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적어도 무겁고 지탱하기 힘든 순간에 힘을 빌려주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길 바란다. 그리고, 내 주변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먼저 지탱하고 의지할 때가 필요한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나이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운명론, 그리고 바람이 되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