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and :re
시간은 늘 내 편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왔다. 전역 이후 3개월가량이 흘렀다. 많은 도전과 실패,
그리고 약간의 성공. 다양한 결과에 따른 맛의 변화, 느낄 새도 없는 시간의 흐름.
물 흐르듯, 그저 흘러가는 대로 가라던 누군가의 말이 귀에 맴돌다 못해 뺨을 후린다.
결론이 그저 단순한 '선택'이라면 나는 왜 주저하고 망설였는가. 도전과 실패 그리고 약간의 성공.
나는 단 한순간이라도 최선이었나. 어중간한 노력, 이에 따른 음미하지 못한 맛의 변화.
이 모든 것들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삶'이라면, 최선의 여부를 고민하는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 아닐까.
물 흐르듯 살아가는 과정을 이유 없이 두려워했다. 안정감에 대한 불신, 불신이 낳는 불안감.
이 모든 과정이 하나로 연결되는 '나'라는 정체성. 그냥 이런 나라도 괜찮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의문에 따른 대답은 '시간은 내 편이 아닌 것 같다'는 반골기질적 표현.
변화를 추구함과 동시 안정감을 얻고자 했던 모순. 모순의 끝은 핑계였고, 그러한 핑계가 게으름을 만들었다.
느린 흐름 속에서 재빠른 변화의 추구는 당연히 일어날 리 없었을 터.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눈을 돌렸다.
나에게로 향하는 화살을 막아내고자 다른 누군가를 방패로 세웠다.
핑계가 만들어낸 방어막은 내 안의 목적의식 하나로 대체된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펜을, 아니 키보드를 잡았다. 이러한 생각의 뿌리는 '글을 써야만 한다'는 목적의식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저 과거부터 이어져왔던 굴레이자 연속성. 즉,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삶'인 것인가.
나는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사람이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유하고 점검하고자 하는 것은 내 안의 어떤 방어막인가. 혹은 어떤 반골기질인가.
장기간의 공백이 만들어낸 결과는 나름 나쁘지 않았다. 비록, 정말 원하던 성과는 한 날의 꿈이 되었으나,
그 꿈속에서 나는 또 다른 꿈을 꾸었다. 그 어떤 이들보다 자유롭고, 자랑스러웠다.
지금은 어떠한가, 오히려 그 꿈속의 꿈보다 더 나 답지 않은가.
물 흐르듯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정의하는 '흐름', 즉 '어디에서 어디로'의 기준은 누구인가.
고이기를 원치 않는 태도가 만들어 낸 새로운 흐름,
그 안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가는 '나'는 연어인가, 뱀장어인가.
시도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지만 대조적으로 얻는 것은 현재의 만족감과 안온함.
상반된 가치에서 드러나는 개인적 표현은 꼭 하나로 결정되어야 하는가.
밥을 얻어먹던 사람에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밥을 사주는 사람이 되었다.
진심으로 응석을 부리던 사람에서, 이제는 마지못해 응석을 받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나 역시도 상반되게 변하지 않았는가, 그 안에서의 흐름이 어떻게 고정적일 수가 있겠는가.
물 흐르듯, 그저 흘러가는 대로 가라던 누군가의 말이 귀와 뺨이 아닌, 코 끝에 스친다.
그 역시도 이러한 변화를 맛보았을까, 아니 맛볼 새도 없이 사라졌던 걸까.
이정표대로 따라가던 삶을 살아본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걷던 길의 개척의 주체는 누구인가.
내가 걷던 그 길을 만든 것은 내가 만든 '형태 없는 이정표'가 아니었을까.
이번 흐름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다시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은 어디에서 온 것이며 어디로 흘러가는가.
나의 '형태 없는 이정표'의 종점은 나는 헤아릴 수 있을까.
조만간 나는 다시 밥을 얻어먹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과정조차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삶과 시간의 흐름이라면,
내가 추구한 변화, 얻고자 했던 삶, 되고자 했던 무언가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보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정해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내 꿈속의 꿈보다 더 나 다운 나라면,
새로이 만들어진 흐름에 몸을 맡겨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