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는 있고, 사람은 없어졌다.
연말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올해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말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계절인데,
우리 팀에서는 그 말이 유난히 낯설다. 말 대신 공기가 먼저 얼어붙었다.
팀장이 변했다.
정확히 말하면, 임원 진급에서 미끄러진 이후 부터다.
회의에서 웃음이 사라졌고, 메신저 답장은 짧아졌다.
예전엔 “그건 내가 정리할게”라던 말이,
요즘은 “강하게 말씀드립니다. 하세요”로 바뀌었다.
본인의 레퍼런스에 흠집이 될 만한 일이라면, 그 책임은 반드시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이 눈에 띄게 불편 해졌다.
그동안 팀장에게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파트장이었다.
같은 일을 두고, 두 개의 이야기
파트장을 다른 팀으로 보내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연말 인사 시즌, 가장 차가운 말이다.
그 파트장 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팀장이 휴가인데도 전화가 왔어요 본부장, 실장님이 정한 거니 팀을 옮겨야 할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팀장에게 들은 이야기는 정반대였다.
“제가 전화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 실장님이 궂이 전화를 통보하셨고, 저도 어쩔 수 없이...통화는 했지만 전 절대 안된다고 했어요. 처음엔.. 좋은 기회라고들 하시더라구요. 맞는 말 같기도 해서 옮기는 것으로 이야기 해보려고 해요”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거짓말의 방향이 분명해졌다.
실장이 오히려 이동을 말렸다는 사실,
팀장이 먼저 “그 사람, 다른 팀이 더 맞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이상하게도 그때, 아무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미 연말 고과 시즌에 비슷한 장면을 한 번 봤기 때문이다.
“내가 준 게 아니야”
고과가 낮게 나온 팀원이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을 때,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내가 준 점수는 아니야. 위에서 조정했어.”
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확인해보니, 조정은 없었고 점수는 팀장이 준 그대로 올라갔다.
그때 그 팀원은 점수보다 더 낮아진 게 있었다고 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였다.
“내년엔 구조조정이 있습니다”
연말 마지막 주간업무보고에서 팀장은 조용히 말을 꺼냈다.
“내년에 구조조정이 전체 인원에 xx%정도 있을 거에요. 임원들한테 찍히지 않게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말은 묘하게 이렇게 들렸다.
임원 말고, 나한테.
조심하라는 말이, 보호가 아니라 경고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말이 우리를 위한 건지, 팀장이 우리를 관리하기 위한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연말인데, 왜 더 추울까?
회사 로비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다.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라는 문구가 반짝인다.
하지만 사무실 안은 유난히 춥다.
외투를 벗지 못한 채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늘었다.
온도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다.
연말은 원래 이런 시기였을까.
아니면 우리가 연차가 제법 있는 직장인이 되면서
연말을 이렇게 보내는 법을 배운 걸까.
누군가는 오늘도 엘리베이터에서 말한다.
“연말 잘 보내세요.”
그 말이 인사가 아니라, 서로에게 보내는 위로처럼 들리는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