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름으로
이직은 늘 희망의 이름으로 시작된다.
“이번에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
면접장에서 그렇게 다짐했다. 전 직장의 매너리즘, 군대 뺨 때리는 상명하복 문화, 노조를 위한 노조의 의한 일, 무의미한 보고서 속에서 나는 매일 탈출을 꿈꿨다. 그리고 드디어 탈출했다.
하지만 이곳은 낙원이 아니었다.
새 회사의 첫 주, 출근길에 들뜨던 마음은 곧 식었다. 전 직장에서는 ‘일을 많이 시키는 회사’라 욕했는데, 여기선 일을 시킬 사람조차 없었다. 시스템은 엉망이었고, 업무 프로세스는 ‘감’으로 돌아갔다. “우린 원래 이렇게 해요.”라는 말이 마치 회사의 슬로건처럼 들렸다.
처음엔 ‘적응의 문제겠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회의에서 내 의견을 내면 “그건 전 회사 스타일이잖아요”라며 묵살당했고, 성과를 내도 “그건 니가 알아서 한 거니까 회사랑 상관없다”는 말을 들었다.
전 회사에서는 나를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 불렀는데, 여기서는 “괜히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퇴근 후 거울을 보니, 내 표정이 매일 조금씩 굳어 있었다.
“전 회사가 그렇게 좋았냐고요?”
처음엔 ‘절대 아니야’라고 답했지만, 점점 확신이 흔들렸다.
전 회사의 현금성 복지들, 자동차 할인, 연차 만큼 쌓인 휴가와 매년 나오는 성과금, 당연하게 생각했던 여름휴가 와 그 때마다 회사 법인 회원가로 예약했던 콘도, 매일같이 투덜대던 동료들의 농담, 심지어 밤이고 주말이고 호출하던 노조 집행부 아재들까지…
모두 그리워졌다.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다.
“이런 건 어느 회사나 다 있겠지.”
하지만 아니었다. 이직한 회사에는 그런 ‘사람 냄새’가 없었다.
점심시간에 사내식당에서 아무말 없이 밥만 먹고 가고, 퇴근 시간에 "밥 먹고 합시다"를 외치는 팀장과 따라나서는 팀원들, 그리고 그 저녁식사 자리에서 역시 아무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시간은 없어지고 또 업무가 시작된다. "집에 안가냐?ㅠㅠ"
그제야 깨달았다.
전 회사가 힘든 게 아니라, 나는 그 속에서 살아 있었던 거였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