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살, 다시 신입이 되다.
퇴근 후, 노트북을 켰다.
인쿠루트, 잡코리아, 자소설닷컴 ,링크드인, 리멤버...구직 정보를 볼 수 있는 플랫폼들을 동시에 열어놓고 이력서를 고쳤다.
환승이직...이직 후 1개월만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경력직으로 보기엔 연차가 많고, 관리자급으로 보기엔 애매하네요.”
헤드헌터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서 다시 ‘신입처럼’ 자기소개서를 썼다.
‘저는 배우는 걸 좋아합니다.’
‘성실히 주어진 일을 해내겠습니다.’
몇 년 전, 사회 초년생 시절에 쓰던 문장을 다시 꺼내면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 한숨은 결국 가족들에게 향했다.
아내가 물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딸린 식구들 생각은 하고 있는거지?”
나는 대답 대신 짜증으로 답했다.
“알아 안다고,”
사실은 두려웠다.
내가 더 이상 ‘가장으로서의 자신감’을 잃어버린 게 들킬까 봐.
굵지의 여러 기업에 면접을 보았고, 전직장과 같은 계열의 회사들도 면접기회를
얻었지만.. 같은 계열의 회사들은 배신자라는 단어만 쓰지 않았지
모든 분위기와 말들이 배신자를 대하듯 면접이 진행됐다.
여러차례 면접으로 이직 후 1개월마다 한개 씩 생기는
얼마되지 않는 연차를 소진하였고...
아이들과 여행 한번 없는, 따로 쉬는 날 한번 없는 생활이 진행됐다.
면접을 보기 위해 연차를 쓸 때도 티내지 않기 위해
회사에는 아이가 아프다는 거짓말을 하고...
"아이가 많이 약한가봐요. 그렇게 맨날 아프게."
다시한번 이 거지 같은 회사를 나가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이직 후 1년도 안된 사람을 뽑아 줄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이직하자마자 환승 이직하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는 것도..점점 지쳐갔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그때 그냥 버틸 걸 그랬나.’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죽고 싶단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아이 방에서 들려오는 코골이 소리에 그 말은 삼켜졌다.
죽을 수 없는 사람, 살아야 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