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부는 차고 매서운 인사의 바람
연말이면 회사 복도에 바람이 분다.
찬바람이 아니라, 누가 먼저 떨어질지 모르는 긴장과 소문이 뒤섞인 바람.
올해도 어김없이 임원,팀장 인사와 조직 개편이 다가오고, 회사는 보이지 않는 진동으로 하루 종일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존재감이 도드라지는 사람이 있다.
우리 조직 사람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한숨이 땅을 꺼지게 한다.
언제나 자리 보존을 위해서라면 어떤 상식과 도리도 예의도 내려놓을 수 있는 임원. 팀장과 직원들이 매일 마음을 다잡다가도 열폭하며 서로를 진정시키다가 이제 끈끈한 전우애를 만들게 해준 ‘그 분’.
항상 위에서 시킨일이라며 본인 생각이 1도 안들어간 일을 진행시키려 하고,
그러다가 멀쩡한 조직도 헤집고 다닌다.
예컨대 폐쇄 예정인 해외 공장의 담당자에게 굳이 연락을 돌려, 법무도 컴플라이언스도 무시한 채 “도와줄 게 없냐”며 일을 만들어보려 한다. 본인이 꽂아둔 담당자를 통해 일을 만들어내려는...
거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팀장은 물론 관련 직원들까지 매일 호되게 몰아세운다는 데 있다.
이쯤되면 ‘일’이 아니라 ‘불안’을 벌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더 피곤한 건 그 임원 주위를 끈끈하게 맴도는 고참 한 분이다.
입사 동기들 사이에서는 한때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로 통했지만, 그 면모는 이미 오래전에 저물었다. 지금은 매일같이 그 임원의 기분을 맞추느라 눈치를 살피고, 보고서 한 줄에도 공들여 가며, 사실상 하수인처럼 보일 정도다.
그 선배는 요즘 들어 더 초조하다. 혹시라도 그 임원이 날아가고 조직이 바뀌면, 본인은 지방 사업장으로 갈까봐 잠을 못 이룬단다. 낮이면 한숨을 쉬고, 저녁이면 임원을 찾아 술을 대접하며 충성의 끈을 잡아보려 애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처음엔 환멸을 느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저런 모습으로 늙어가고 싶진 않은데.”
하지만 어느 순간, 책상 앞에 앉아 허리를 일으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어떤 몸부림을 시작하게 되는 때가 오겠지.’
어쩌면 저 선배도, 그 임원도, 나도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누구나 이 거대한 회사의 톱니바퀴 속에서 다음 한 칸 밀려날까봐,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그럴듯한 명분으로 불안을 덮어두고, 언젠가 누군가의 뒷모습을 닮아갈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저 선배의 한숨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대로 책상 위의 커피를 내려다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먼 훗날, 나도 예외가 아닐지 모른다는 깨달음이, 여전히 낯설고 조금은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