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5원의 무게, 그 떡갈잎 자루가 가르쳐준 경영학

부제: 400명의 생존권을 지키는 힘은 50장의 잎사귀에서 시작되었다.

by 아빠 매니저

우리 집 경제 지도는 야산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 우리 집의 경제적 지도는 마을 뒤편 야산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이슬을 맞으며 산에 오르셨습니다. 어머니가 찾던 것은 화려한 산삼도, 값비싼 약초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산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모양이 반듯하고 구멍 나지 않은 '양호한 떡갈잎'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잎들을 하나하나 따서 등짐에 지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집 마당에 앉아 잎의 크기를 맞추고 이물질을 털어내며 정성스럽게 갈무리하셨습니다. 떡갈잎 50장. 그 50장을 흐트러짐 없이 묶어야 비로소 한 묶음이 완성되었습니다. 당시 그 한 묶음의 가격은 단돈 25원.

어머니는 우리 가족의 하루 생계를 위해 그 고단한 손놀림을 수만 번 반복하셨습니다. 25원을 벌기 위해 50번의 허리를 숙이고, 50번의 정성을 모아야 했던 그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 바로 나의 집 마당이었습니다.


기둥 뒤로 숨어버린 소년의 비겁함

중학교 시절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버스터미널로 향하던 나는 그곳에서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사람들 사이로 어머니가 보였습니다. 어머니의 몸보다 서너 배는 더 커 보이는 거대한 떡갈잎 자루가 어머니의 좁은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자루를 버스 짐칸에 싣기 위해 안내원과 실랑이를 벌이던 어머니의 모습은, 사춘기 소년의 눈에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러운 풍경으로 비쳤습니다. 나는 차마 어머니를 부르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이 저 초라한 행색의 여인이 내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워, 나는 기둥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어머니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보다 내 자존심의 상처가 더 크게 느껴졌던 비겁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뼈를 깎아 만든 그 25원짜리 묶음들을 팔아 내 학비를 마련하고 계셨는데, 나는 그 사랑을 외면하고 어둠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훗날 내가 자리를 잡은 뒤에도 문득문득 가슴을 찌르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25원에서 400명의 생존권으로


세월이 흘러 내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서야, 나는 비로소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그날의 비겁함을 고백했습니다. 어머니는 91세로 소천하시기 전까지 막내아들이 '사람 구실' 하며 사는 것만을 유일한 여한으로 삼으셨습니다.

오늘도 나는 400명 직원의 생존권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결정이 무겁고 어깨가 처질 때면, 나는 터미널 기둥 뒤에 숨어 있던 그 중학생 소년을 불러내 마주 봅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다시는 숨지 않겠노라고 말입니다. 내게 맡겨진 이들의 생계는 어머니가 지켰던 그 25원짜리 떡갈잎 묶음만큼이나 신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 드리는 마지막 보고서

어머니의 떡갈잎 한 장 한 장이 모여 나의 오늘을 만들었듯, 나의 정교한 결단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가정에 따뜻한 밥상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습니다. 이것이 내가 어머니께 드리는 가장 마지막이자 완벽한 '사람 구실'의 보고서입니다.


정직하게 쌓아 올린 25원의 진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록하는 자는 패배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늘도 그 진실을 믿으며 묵묵히 나의 길을 기록해 나갑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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