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한복판의 초가집, 그리고 비정한 거절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았던 위태로운 초가집에서 시작됩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쓰러질 듯 신음하던 그 집은, 당시 우리 가족의 처지를 그대로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집을 새로 지으려 했을 때, 우리는 인생의 첫 번째 거대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우리가 대대로 살아온 그 터가 사실은 남의 땅이었던 것입니다. 홀어머니와 세 아이뿐인 우리 가정을 향해 마을 어른들은 차가운 등을 돌렸습니다. 새로운 집터를 내어주지 않는 것은 "이 마을에서 너희의 자리는 없다"라는 비정한 퇴거 명령과 같았습니다.
구걸하지 않는 삶, 산꼭대기에서의 독립 선언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매달리며 읍소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의 선택은 파격적이었습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 세상의 시선이 닿지 않는 저 높은 산꼭대기로 우리를 이끄신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등 떠밀려 가는 피난길이었을지 모르나, 어머니에게 그것은 ‘구걸하지 않는 삶’을 향한 독립 선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산의 흙을 파내고 볏짚을 섞어 직접 흙벽돌을 찍어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흙벽돌 한 장 한 장은 우리 가족을 지켜줄 가장 단단한 ‘성벽’이 되어갔습니다. 그것은 가난이라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한 여인의 처절하고도 당당한 기록이었습니다.
정화수 한 그릇, 침묵의 기도가 만든 방패
집이 완성되어 가던 어느 새벽, 자욱한 안개가 산꼭대기를 감싸 안은 시간. 어머니는 장독대 위에 맑은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간절히 머리를 숙이셨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소리가 없었으나 광장 위의 웅변보다 더 쩌렁쩌렁하게 내 심장을 울렸습니다.
"내 어머니의 기도가 저 산꼭대기에서 나를 지키고 있는데, 내가 어찌 무너질 수 있겠는가."
성장 과정에서 가난이 검은 유혹의 손길을 뻗칠 때마다 나를 다잡아준 것은 바로 그 새벽의 기도였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나를 수직으로 세워준 강력한 ‘도덕적 방패’였고, 내가 지금껏 '존재감 있는 리더'로 살아오게 만든 근원적인 힘이었습니다.
흙벽돌집에서 영산정사(靈山精舍)로
세월이 흘러, 우리 가족이 흙벽돌을 찍어 올렸던 그 산꼭대기 집터는 이제 ‘영산정사’라는 사찰의 터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버렸던 척박한 땅이 성스러운 기도처가 된 것입니다. 마을에서 거부당했던 아이가 산꼭대기에서 홀로 일어서고, 마침내 경영학 박사이자 공공기관의 장이 되어 돌아왔을 때, 그 터는 이미 만인을 품는 자비의 공간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작년 3월, 당신이 직접 흙벽돌을 찍어 올렸던 그 고향 집에서 조용히 소풍을 마치셨습니다. 떠나시기 전,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남기신 마지막 말씀은 의외로 담백하고도 묵직했습니다.
“이제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이제야 마주하는 진정한 자유
그 짧은 한 문장이 가슴에 박히는 순간, 60년 세월 동안 억눌러왔던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습니다. 돌이켜보면 나의 생은 늘 ‘해야만 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가난을 이겨내야 했고, 대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며,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내야 했습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라는 말씀은 이제 그 무거운 책임감을 다 내려놓으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응원이었습니다. 나는 이제야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현재 겪고 있는 삶의 여러 진통과 시련 또한, 사실은 내가 진짜 나로 거듭나기 위해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임을 말입니다.
어머니가 남겨주신 ‘자유’의 열쇠를 쥐고, 나는 이제 내 인생의 세 번째 서재로 들어섭니다. 흙벽돌집에서 시작된 나의 기도는, 이제 나의 글을 통해 세상에 다시 흐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