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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배 Apr 02. 2022

“백락이 있어야 천리마도 있다. ‘조명’도 그러하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자동차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사람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은 ‘말’이 유일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은 보통 1시간에 10리를 걷는다고 합니다. 10리는 4km지요. 하지만 말은 이보다 훨씬 빨리 이동합니다. 말이 아주 느린 속도로 걷는다면 1분에 110m, 1시간에 6.6km를 간다고 합니다. 조금 빠르게 걸으면 1분에 220m, 1시간에 13.2km를 갑니다. 보통 속도로 달릴 때는 1분에 320m, 1시간에 19.2km를 갑니다. 아주 빨리 달릴 때는 1분에 990m, 1시간에 59.4km를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빨리 달리기 때문에 당나라 사람들은 ‘말’을 아주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특히 보통 말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는 말은 하루에 1000리(400km)를 달리는 말이라고 해서 ‘천리마(千里馬)'라고 불렀습니다. ‘천리마’의 값이 평범한 말에 비해 적게는 몇 배, 많게는 몇 십 배 비쌌던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런 ‘천리마’가 마냥 행복했던 것은 아닙니다. ‘천리마’의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가 ‘천리마’인줄 알아야 비로소 ‘천리마’로 대우를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가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른다면 ‘천리마’로 인정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천리마의 비애'


더 큰 문제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라고 해도 그런 능력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보통 말과 다름없는 대접을 받을 수밖에는 없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천리마’는 매우 불행해집니다.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통 말처럼 마차나 끄는 말로 평생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천리마는 한 번에 천리를 달리기 때문에 그만큼 먹이도 많이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이 천리마인줄 모르는 사람들은 마차나 끄는 말처럼 먹이를 조금밖에는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매일 배를 곯다가 나중에는 배고픔에 지쳐서 비실비실 쓰러져 생을 마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깁니다. 


그러므로 ‘천리마’에게 있어 자기가 ‘천리마’인줄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당나라 시절에 그렇게 평범한 말들 가운데서 ‘천리마’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백락(伯樂)'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락은 날이면 날마다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천리마’는 많아도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이 없어서 노새처럼 짐이나 싣고 다니거나, 마차나 끌고 다니다가 죽은 ‘천리마’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이 없는 세상의 세태를 한탄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당나라 시대의 문인 한유입니다. 그가 쓴 ‘잡설’이라는 글은 중국의 명문장을 모아놓은 책인 ‘고문진보’에 실려 있는데, 이렇게 시작합니다. 


“세상에 백락이 있은 연후에라야 비로소 천리마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천리마가 있어도 다른 보통 말과 같이 굶주리다가 죽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 지금은  '천리마보다 백락이 더 필요한 시대'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비단 당나라 시대의 일만은 아닙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수도 없이 벌어집니다. 예를 들어서 훌륭한 사람이 있어도 세상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 좋은 제품이 있어도 그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도 ‘백락’을 만나지 못한 ‘천리마의 신세’와 다름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도 필요한 것이 바로 ‘백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의 역할’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현대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을 ‘비평가’또는 ‘평론가’라고 부릅니다. 


‘평론가’는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삼고 오랜 경험을 통해 뛰어난 사람과 작품을 감별해내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평론가’는 마치 수많은 돌 속에 섞여 있는 옥(玉)이나 다이아몬드를 골라내서 보석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보통 말 속에 묻혀 있는 ‘천리마’를 진짜 ‘명마(名馬)’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 세상에 ‘백락’이 있어야 ‘천리마’가 있을 수 있듯이 올바르게 비평을 하는 ‘평론가’가 있어야 훌륭한 사람이나 우수한 제품도 제값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좋은 조명 제품과 기업을 알아보는 ‘조명 평론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유입니다. 

/글 : 김중배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 조명 평론가. 


# 이 글은 [한국조명신문] 2018년 7월 1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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