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배 Apr 02. 2022

‘아버지의 조명가게’ 이야기

지난해 가을에 서울시 중구 청계천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조명업체를 방문하러 갔다가 길을 잘못 찾는 바람에 작은 뒷골목으로 들어선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청계천에 가더라도 큰길가 옆의 조명매장을 주로 다녔지 뒷골목은 그다지 들어가 본 적이 없었던 저는 그 골목 안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냉면골목’으로 겨우 빠져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새삼 깨달을 것은 그 작은 골목 안에도 무수히 많은 조명매장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조명매장은 10평도 안 돼 보였고, 조금 큰 조명매장이라고 해봐야 20평이 안 되는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청계천 골목의 조명가게’들

 

놀라웠던 것은 그 골목 안에 있는 조명매장들이 처음 생겼던 수 십 년 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그 골목 안의 조명매장들은 대부분 오래 된 한옥이나 1970년대 경에 흔히 보았던 ‘작은 점포’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외관의 모습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 건물들은 적어도 수 십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 거의 분명했습니다. 


“불과 20~30미터만 밖으로 나가면 새롭게 정비한 청계천이 흐르고 길 양쪽으로는 번듯한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선 서울의 간선도로 안에 1970년대 풍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런 건물들 안에 아주 오래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조명매장들이 수 십 년 째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하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이 짠하게 아리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조명가게’에 대한 어느 수필가의 추억 


그런 일이 있고나서 한 2개월 정도가 지난 12월 중순경 저는 한 중앙일간지를 읽다가 아주 우연히 어느 여류 수필가 분이 쓴 칼럼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 칼럼은 신문의 위쪽에 실린 다른 칼럼과 달리 신문 아래쪽에 작은 크기로 실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에 실린 칼럼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찾아서 읽는 저같은 ‘칼럼 매니아’가 아닌 보통의 신문 독자라면 무심결에 지나쳐 버리고 말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 칼럼에 주목을 한 이유는 그 칼럼의 제목에 ‘조명가게’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이 칼럼은 한 여성 수필가께서 쓰신 것으로, 그 내용은 1970년대에 청계천 골목 안에서 작은 조명가게(전업사)를 운영하신 아버님에 대한 추억입니다. 


이 칼럼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조명가게’는 세운상가가 아니라 청계천 골목 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님께서 세운상가가 아니라 청계천 골목 안쪽에 작은 가게를 낸 이유에 대해 수필가 분은 “당시 세운상가에 점포를 내려면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아버지의 조명가게’에서 파는 제품은 형광등, 서클라인, 그리고 조명기구 안에 들어가는 안정기나 스타터, 플러그, 소켓, 전선 등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취급하는 품목은 많았지만 가게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수필가께서는 ‘아버지의 조명가게’에 대해 “길고 좁고 어두컴컴한 통로와도 같은 가게였다”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조명가게’보다 이 수필가의 기억에 더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 조명가게에서 일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아버지에 대해서 이 수필가께서는 “셔터를 내릴 때 그 무게감을 버티시던 굽은 어깨, 저녁 때 귀가해 손을 씻으면 씻어도씻어도 나오던 구정물”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이 보이지 않던 그 골목엔 언제나 매캐한 먼지바람이 휘몰아쳤었다”고 썼습니다. 


이 칼럼을 읽다보면 누구나 눈앞에 떠오르는 ‘그림’ 하나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그림’은 청계천 골목 안에 있는 작은 ‘조명가게’에 앉아 있는 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보면서 남 몰래 안타까워하고 마음 아파하는 어린 소녀의 모습입니다. 


소녀는 아침저녁으로 힘들게 조명가게의 셔터 문을 열고 닫는 아버지의 굽은 어깨 때문에 늘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고 장사를 끝내고 돌아오신 아버지가 손을 씻을 때마다 끝없이 나오는 ‘구정물’을 보면서 마음속으로만 울먹입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힘들게 일하시는 아버지가 늘 안쓰럽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칼럼을 쓰기 전에 수필가께서는 옛날 ‘아버지의 조명가게’가 있었던 자리를 찾아가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세모에 나의 발길이 청계천 골목으로 움직인 건 그 때문이다. LED 조명으로 바뀌었지만 골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더 밝지만 온기가 없는 듯 차가운 조명가게들 사이로 한때 아버지의 가게였던 곳은 아직도 전선을 팔고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의 가족이야기


수필가께서는 “돌아가신 지 30년이 흘렀고 그곳에서 손을 떼신 지는 더 오래되었건만, 그 골목에 서서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초라했지만 비굴하지는 않았던 눈빛, 빈손으로 물러났지만 그 누구도, 시절도 원망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리움에 손을 모은다”는 글로 칼럼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이 수필을 읽으면서 저는 그동안 제가 만난 모든 조명매장의 사장님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울러 그 분들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시는 것이 사실은 집에 있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딸들을 위해서라는 것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어렵다”고 말하는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서 애쓰고 계시는 이 땅의 모든 조명가게 사장님들의 사업이 부디 잘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 드린 ‘아버지의 조명가게’라는 칼럼을 쓰신 분은 호원숙이라는 여성 수필가이십니다. 놀랍게도 호원숙 수필가님은 우리나라 문학사에 아주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신 여류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의 따님이십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조명가게’를 운영하신 분은 그 박완서 선생님의 부군(夫君)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호원숙 수필가께서 쓰신 ‘아버지의 조명가게’는 대(大)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 가족에 관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 수필에 등장한 ‘아버지의 조명가게’를 운영하셨던 분은 호영진(扈榮鎭) 선생님이십니다. 


호영진 선생님은 당시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시던 박완서 선생님을 만나 1953년 4월 21일 결혼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칼럼을 쓰신 호원숙 수필가님은 호영진 선생님과 박완서 선생님 슬하의 1남 4녀 중 한 분이십니다. 

/글 : 김중배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 조명평론가. 


# 이 글은 [한국조명신문} 2019년 2월 15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아버지의 조명가게’ 원문 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8/2018122800096.html


작가의 이전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