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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배 Apr 02. 2022

‘하노이 북·미 회담’, 그리고 ‘사실’과 ‘진실’의

지난 2월 27일과 28일 이틀 동안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는 ‘세기(世紀)의 담판’이라고 하는 ‘북·미 회담’이 열렸습니다. 이 회담을 앞두고 세계의 많은 언론매체와 시사평론가들은 “어떤 규모와 형식, 내용이 됐든 미국과 북한은 이번 협상에서 합의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비록 일부에서 협상의 진행과정과 협상과정에서 흘러나온 이런저런 합의내용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놓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 떨어지게 “이번 ‘하노이 북·미 회담’이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언론 매체나 시사평론가를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진행됐던 ‘하노이 북·미 회담’은 단 한 줄의 합의문도 내놓지 못한 채 황망하게 끝이 났습니다. 그 이후에 남은 것이라고는 세계 각국의 거의 모든 언론 매체와 거의 모든 시사평론가들이 쏟아내는 ‘아전인수식’ 논평뿐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회담 결과를 놓고 전 세계의 언론 매체와 시사평론가들이 저마다 다른 보도와 논평을 내놓은 경우는 지금까지 그 유례가 없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사실’과 ‘진실’ 


저 역시 많은 분들처럼 이번 ‘하노이 북·미 회담’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습니다. 다만 이번 회담의 전 과정을 보면서 느낀 점은 다른 분들과는 조금 다를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번 ‘하노이 북·미 회담’이야말로 “‘사실’과 ‘진실’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회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기야 ‘사실’과 ‘진실’이란 언론사와 언론 매체, 그리고 모든 언론인들이 똑같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언론사와 언론인은 “사실을 밝히고 진실을 추구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그 언론사가 지닌 이념적, 정치적 성향이 무엇인가? ▲그 언론사가 얼마나 큰가? 작은가? ▲그 언론사가 부유한가? 가난한가? ▲그 언론사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느냐? 같은 점들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언론사가 ‘사실’을 밝히고,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사인가? 아닌가?” 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언론이 똑같이 추구하는 ‘사실’이나 ‘진실’이 과연 어떤 것이냐?”에 대해서 쉽게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이 곧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똑같이 ‘사실’이나 ‘진실’이란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서로 생각과 입장,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 단어에 대한 정의(定意)나 해석이 바뀔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실’이었을까요?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미국에게“영변의 핵시설을 모두 폐기하는 것이 곧 북한의 핵을 모두 폐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대신 유엔과 미국이 현재 실시 중인 대북 제재 10개 가운데 가운데 민생에 관한 것 5가지만 해제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한 대로 “영변의 핵시설을 모두 폐기하는 것이 정말 북한의 핵을 모두 폐기하는 것”이라는 말은 ‘사실’이었을까요? 


만에 하나 북한이 영변 이외의 지역에 우라늄이나 플라토늄을 재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따로 만들어서 운영 중이고, 이미 만든 핵탄두와 미사일도 그대로 갖고 있으며, 영변 핵시설을 폐기한 뒤에도 계속해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면, 북한이 한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북한 측이 기자회견에서 “대북 제재 10개 중 일부(5개)만 해제해 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10개의 대북 제재 사항 가운데 5개만 해제하면 대북 제재의 99% 를 해제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즉, 이번에 북한은 미국에게 ‘10개의 제재 항목 중 일부인 5개만 해제해 달라’는 ‘형식적인 사실’을 앞세워 실제로는 대북 제재의 99%를 풀어달라고 요구한 셈입니다. 


이렇게 ‘형식적인 사실’과 ‘실체적인 진실’이 서로 맞지 않다보니 미국과 북한은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것만을 노출시킨 채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실’의 앞과 뒤가 모두 같은 것만이 ‘진실’ 


이처럼 무엇이 사실인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과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능력이란 상대방이 하는 말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이해해서 ▲말의 맞고 틀림(正誤)과 ▲옳고 그름(是是非非), 그리고 ▲좋고 나쁨(善惡)과 ▲이해득실(利害得失)를 분별하는 힘입니다. 


어찌 보면 ‘사실’과 ‘진실’은 수학의 가감승제(加減乘除)나 회계의 대차대조표처럼 앞면과 뒷면이 수리적(數理的)으로, 또 수치적(數値的)으로 딱 맞아 떨어지는 ‘그 무엇’일지도 모릅니다. 


즉, 앞면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사실’이라고 한다면 , 앞면과 뒷면이 모두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이번 ‘하노이 북·미 회담’은 우리들이 ‘사실’과 ‘진실’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글 : 김중배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 조명평론가. 


# 이 글은 [한국조명신문] 2019년 3월 2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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