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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배 Apr 02. 2022

‘언론’과 ‘기자’, 그들은 누구인가? ①

최근에 우리나라 정치계는 물론이고 각계각층에서 연일 ‘언론(言論)’과 기자(記者)라는 단어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언론’과 ‘기자’가 이처럼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던 적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기야 과거에도 ‘언론’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던 적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1974년 12월에 발생했던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입니다.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란 당시 박정희 유신(維新) 정권 아래서 발생한 언론 탄압 사건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에 동아일보의 일부 기자들이 참가한 것이 밝혀지자 정부가 기업들에게 압력을 가해 동아일보에 광고를 싣지 못하게 한 것이 이 사건의 본질입니다. 


기업들이 일시에 광고를 중단하자 동아일보는 갑자기 광고가 끊어져 경영난을 겪게 됐고, 광고 지면을 백지로 남겨둔 채 신문을 발행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이런 정부의 조치에 항의하는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신문에 박스광고를 실어주면서 동아일보를 성원하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이후 조용했던 언론 


하지만 이 일이 있은 이후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론’이 국가나 사회적인 이슈의 중심으로 떠오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마도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를 직접 눈으로 본 ‘언론매체’들이 스스로 ‘백지 광고 사태’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자제했거나, 아니면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언론기관(언론사)’ 과 ‘언론매체(신문과 잡지, 라디오와 TV 등)’에 은연중 작용했던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조용하게 세월을 보내던 언론’이 이번에 갑자기 국가와 사회의 이슈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지난 3월 1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미국의 한 유력 언론매체가 지난해 9월에 보도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인가?”란 제목의 기사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 때 인용(引用)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 대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들고 일어나 항의를 하면서 일이 일파만파 커진 것이지요.


그 이후로 국회와 정당들은 물론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이 사안에 대해 저마다 한 마디씩 말을 거들고 나서면서 마침내 이 일은 거국적인 이슈로까지 떠올랐습니다. 


지금 일이 진행돼 가는 것을 보면 국회 연설 차원을 벗어나 문제의 기사를 쓴 기자의 실명을 여당이 거론하면서 ‘반역’이니 ‘모반’이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말까지 해대는 상황으로 번진 확산된 것 같습니다. 


게다가 명색이 ‘말로 먹고 산다는 정치인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이치에 닿지 않는 말들을 툭툭 내던져 국내 주재 외신기자들이 한데 나서서 “기사를 쓴 기자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명백한 언론 탄압이 아니냐?”라는 의견까지 발표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국제적인 언론 탄압으로까지 번진 것으로 보면 아무래도 관계자가 “미안하다”하고 말 는 뜻을 밝히는 것 정도로는 가라앉기 어려울 것 같아 보입니다. 


◆지금은 ‘품격’과 ‘금도’가 사라진 세상 


이런 사단(事端)이 벌어진 자초지종과는 별도로, ‘언론’은 미국이나 대한민국과 같은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와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국민 개인의 정치적 자유와 천부적인 인권, 사유재산제도를 근간으로 삼하는 시장경제제도, 사상과 언론, 표현, 집회, 결사, 직업선택, 거주이전 등 모든 자유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바로 ‘언론’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유신 정권을 상대로 가장 앞장을 서서 투쟁한 것도 다름 아닌 언론과 언론매체의 기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신 정권에 앞장서서 저항했던 언론기관과 언론매체, 그리고 기자들이 어떤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거에 박정희 대통령 유신시대에 살았던 모든 국민들은, 저를 포함해서, 그 시대에 활동했던 ‘언론’과 ‘기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얼마간의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겠습니다. 


과거에는 ‘언론’을 국회, 정부, 법원 다음에 있는 ‘제4의 정부(第4의 政府)’라고 불렀습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기자들을 ‘무관(無冠)의 제왕(帝王)’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이런 인식은 많이 희박해진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언론 매체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기사를 써주면 모른 척하고 외면하다가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한 줄이라도 쓰면 벌떼처럼 일어나 공격과 비난을 해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품격(品格)’을 지니고 ‘금도(襟度)’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일까요? 아니면 오로지 자기 이익만 챙기는 영악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일까요? 

/글 : 김중배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 조명평론가. 


# 이 글은 [한국조명신문] 2019년 3월 15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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