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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배 Apr 02. 2022

‘언론’과 ‘기자’, 그들은 누구인가? ②

이 세상에는 무수하게 많은 직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하는 직업’이 몇 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군인’입니다. 


군인은 전쟁터에 나가서 전투를 하는 것이 ‘본업’입니다. 총과 칼, 대포와 탱크, 미사일이 난무하는 전쟁터에 나가 전투를 하다보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전사(戰死)하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군인’이야 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직업’의 대표 격입니다. 


하지만 ‘군인’만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업은 아닙니다. 범인을 잡으로 다니는 경찰, 불이 난 건물에 뛰어들어야 하는 소방관,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선원, 비행기를 조종해서 하늘을 날아가다 폭풍우를 만날 수도 있는 비행사도 ‘목숨’을 걸고 하는 직업입니다. 


◆직업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기자들 


그렇지만 이렇게 목숨을 걸고 하는 직업 중의 하나가 ‘기자(記者)’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직업인 가운데 ‘기자’만큼 일을 하다가, 또는 일 때문에 순직(殉職)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국제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 의 자료에 의하면, 2018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순직한 기자만 해도 43명이나 됩니다. 그 가운데 27명은 ‘암살’당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지난해 10월 6일(현지 시각) 불가리아 북부 도시 루세의 다뉴브 강 인근 공원에서는 빅토리아 마리노바(30) 기자가 잔혹하게 살해된 모습으로 발견됐습니다. 


마리노바 기자는 살해되기 일주일 전까지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건설사들이 불가리아 정부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있다고 비판했던 사람입니다. 유럽연합(EU)이 불가리아에게 주는 인프라 건설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서 건설사들이 공사비의 30~40%를 정부 관리들에게 바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제 언론 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마리노바 기자를 포함해서 지난해에 순직한 언론인이 43명이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이 가운데 27명(62%)이 암살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언론인들이 취재를 하다가 죽는 경우는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대부분이 종군 기자로 전쟁에 파견되거나 오지(奧地)에 취재를 갔다가 사고를 당한 경우가 암살을 당한 것보다 많았습니다. 일례로 2017년만 해도 암살당한 기자(18명)보다 사고로 사망한 기자(28명)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언론인보호위원회(CPJ)’가 집계를 시작한 1992년 이후 순직한 전체 기자 가운데 사고로 죽은 기자가 1322명(61%)이고, 암살당한 기자가 848명(39%)이라고 합니다. 사망한 기자 중 40%가 암살을 당했다는 얘기지요. 


◆‘불의’를 고발하다 죽은 기자가 많아


이렇게 기자가 암살을 당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이유는 ▲국가 권력자의 독재나 잘못된 정책을 비난하거나,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 같은 사람들의 부정과 부패, 비리나 정경유착을 폭로하거나 ▲마피아 같은 범죄자 또는 범죄 집단을 고발하거나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기에 대해서 쓴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화가 나서 폭력을 휘두르는 독자에게 맞아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듯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기자가 암살을 당하는 이유의 원인을 캐보면 기자가 쓴 ‘기사’ 때문인 경우가 ‘십중팔구(十中八九)’입니다. 말하자면, “그 기사 하나만 쓰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기자는 목숨을 걸고 하는 직업”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이 말은 “기자는 목숨을 걸고 취재(取材)를 하고, 기사(記事)를 쓴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자라는 직업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장(悲壯)하기 짝이 없는 직업인가?”를 실감하게 해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자’가 가진 것은 오직 ‘기자정신’뿐 


하지만 기자들은 사람들 앞에 잘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기자가 하는 일이 원래 그렇습니다. 남이 박수를 받을 때, 남이 영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박수와 환호를 받을 때 그 현장에서 지켜보고 편집국으로 돌아와 말없이 기사를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그 사람을 더욱 빛나고 유명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기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자에게 영광이 돌아오지도 않고, 박수를 쳐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총이나 칼, 야구방망이라도 들고 신문사나 잡지사로 쳐들어오지만 않는다면 그저 감지덕지 할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박봉에 과로를 밥 먹듯 하는 것이 바로 기자들입니다. 


명예도 없고, 돈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끝까지 취재해서 마침내 쓰고야 말겠다”는 ‘기자정신(記者精神)’ 하나뿐인 사람들, 그것이 바로 기자들입니다. 


문제는 전쟁과 범죄로 위험했던 분쟁 지역뿐 아니라 정상적인 국가에서도 기자 살인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올 2월 슬로바키아 기자 잔 쿠치악(27)은 가슴에 총격을 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쿠치악은 죽기 직전까지 슬로바키아 정권과 마피아의 유착관계를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달 24일 멕시코에서 국제 갱단 범죄를 폭로하던 언론인 세르지오 마르티네스 곤잘레즈(41)는 카페에서 아내와 아침식사를 하다 오토바이에 탄 괴한 2명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지난 2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을 비판하는 글을 미국 언론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해 오던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쇼기(59)가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실종됐습니다. 그는 살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AP통신은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권위주의가 득세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가치를 대변하는 언론인들의 피살이 늘고 있다"고 했습니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살해당한 기자들은 부패를 밝혀내는 탐사보도로 이름을 떨치던 기자들"이라며 "저널리스트들이 세계 어디서든 안전하게 취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1/2018101100264.html

/글 : 김중배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 조명평론가. 


# 이 글은 [한국조명신문] 2019년 4월 1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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