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디자인이란 분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 디자인, 실내 공간을 연출하는 인테리어 디자인, 정원이나 공원을 설계하는 조경 디자인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밖에도 도시의 경관을 설계하는 도시경관 디자인이나 도시 안의 공공 시설물을 설계하고 설치하는 공공 디자인이라는 분야도 있지요. 자동차나 제품을 설계하는 산업 디자인도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환경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환경 디자인이라는 분야도 생겼습니다. 심지어는 사람들의 머리를 보기 좋게 만들어주는 헤어 디자인이라는 분야도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조명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많은 디자인 영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명 디자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조명 디자인이란 대체로 “빛이나 인공 조명을 활용해서 실내 공간이나 옥외 공간의 조명 환경을 어떻게 조성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설계하고, 시공하는 모든 작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조명 디자이너라고 부릅니다.
생각해 보면, 조명 디자인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인류가 동굴 생활에서 벗어나 땅 위에 움막을 짓기 시작하면서 조명 디자인의 역사도 시작됐을 것이라고 추측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건설한 최초의 건축물인 움막을 지으면서 사람들은 “낮에 어떻게 햇빛을 끌어들일 것인가, 밤에는 또 어떻게 어두운 실내를 밝힐 것인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낸 해결책이 움막의 벽에 작은 구멍을 내서 햇빛이 실내로 흘러 들어오게 하는 것이었겠지요.
밤에는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실내를 밝히는 방법을 고안해 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인류가 고안해낸 조명 디자인의 원형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조명 디자인은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1879년 10월 24일에 미국의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개발한 ‘탄소 필라멘트를 이용한 백열전구’는 인류에게 사상 초유의 ‘전기 조명의 시대’를 선사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말하는 조명 디자인은 모두 ‘전기 조명’을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 토마스 에디슨을 현대 조명 디자인의 시조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올해는 토마스 에디슨이 전기 조명의 시대를 연 이후로 141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141년 동안 조명은 백열전구의 시대에서 형광램프의 시대를 거쳐 LED조명의 시대로 진화했습니다. 백열전구로 어둠을 밝히던 시대에 비해서 놀라울 정도로 발전을 한 셈입니다.
◆한국에 처음 등장한 ‘조명 디자인’이란 단어
이런 조명 광원의 진화에 힘입어 조명 디자인도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중입니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조명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실내 공간이나 옥외 공간에 조명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그저 단순히 “등(램프)를 단다.”라고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시절에 우리 ‘조명과 인테리어’가 창간됐습니다. 그리고 ‘조명과 인테리어’는 ‘등을 다는 공사’를 ‘조명 디자인’이라고 이름 짓고 ‘조명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한국에서 누구나 ‘조명 디자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잡지는 왜 ‘등을 다는 공사’를 굳이 ‘조명 디자인’이라고 부르자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잡지가 ‘말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같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건물에 조명기구를 설치하는 작업을 “등을 다는 공사를 한다”라고 말할 때와 “조명 디자인을 한다”라고 말할 때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어감(語感)에는 하늘과 땅 만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등을 다는 공사를 한다‘고 말할 때는 전문성이 없이, 누군가 짜놓은 계획에 따라서, 그저 조명기구를 갖다 달아주는 작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말에서는 아무런 주체성도, 전문성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니면 전기기술자가 다 정해 놓은 뒤에 조명 업체 사람들이 단순히 조명기구를 설치하는 작업만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명 디장;ㄴ’이라고 말을 하면 조명의 전문가인 조명 디자이너가 주체가 돼서 설계하고, 시공하고, 감리하고, 관리한다는 ‘설계’의 개념이 들어가게 됩니다. 조명의 주체성과 독립성, 전문성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 ‘조명 디자인’을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
이렇게 ‘조명 디자인’이라는 콘셉트가 제대로 정립이 돼야 비로소 조명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전문성이 있는 영역으로 발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명 디자인을 하는 데 필요한 조명기구나 조명기구 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제조하는 산업도 전문 산업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조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조명 전문가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말하자면 ‘조명 공사’와 ‘조명 디자인’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조명 공사가 누구나 정해준대로 조명기구를 설치하는 단순한 노동이라고 한다면, 조명 디자인은 조명 공학과 조명 디자인, 엔지니어링과 조명 예술이 서로 결합돼 있는 고차원적인 전문가의 창작 행위가 됩니다.
이것이 30년도 더 전에 우리 잡지가 한국에 ‘조명 디자인’이라는 콘셉트를 도입하고 확산시키기 시작한 진짜 이유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잡지는 이런 ‘조명 디자인’이라는 콘셉트를 더욱 수준 높은 전문 영역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아울러 한국은 물론 세계 각 나라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조명 디자이너 분들이 조명 디자인을 더욱 고급 영역으로 키워나가시기를 기대합니다.
/글 : 김중배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 조명평론가.
# 이 글은 [한국조명신문] 2021년 1월 2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