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라디오에서 시작되었다

by 김창남

그 일요일의 오전은 정말 손님이 뜸했다.

자주 가던 여의도 삼부아파트 입구에 줄을 서 있을 때였다.

쉬는 날이었지만 지갑이 가벼운 나는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작년에 아들은 결혼해 집을 떠나고, 지방대학에 입학한 늦둥이 딸도 집을 떠나자 갑자기 인생이 허무해지는 것을 느꼈다.

7년 전인 오십 대 후반, 사업에 실패하고 빚쟁이들을 피해 지방에서 처음 해보는 노동을 일 년 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곧바로 서울의 법인택시 기사로 취업했다.

택시영업은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들을 수 있는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은 힘든 노동을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예상치 않았던 클래식음악에 점차 빠져 들었다.

그때 자주 듣던 클래식음악 방송의 진행자가 멘트를 했다.

'다음 곡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입니다. 브람스는 이 교향곡을 완성하는데 무려 6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나는 이 멘트에 충격을 받았다.

'아니! 교향곡이 보통 50분 이상의 대곡이긴 하지만 어떻게 그 음악을 위하여 6년을 집착할 수가 있을까?'

그리고 곧 나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1970년부터 주한 미 8군의 영내클럽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나는 편곡자로도 활동했다.

어느 날 좋은 가사가 떠올라 작곡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밤새워 곡을 만들고 새벽에 잠이 들었다.

오후에 일어나 만든 곡을 연주해 보니 지난밤의 감동이 전혀 오지를 않았다.

너무나 수준 이하의 음악인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나에게는 작곡에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들며 악보를 찢어버리고 다시는 작곡을 시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나 쉽게 포기한 것이 후회가 들며 다시 음악에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나이가 벌써 63세이고, 악기를 손 놓은 지 30년이 넘었는데 다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아내였다.

팔십이 넘은 장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회사에 연락을 하고 곧 처갓집인 온양으로 향했다.

다음날 의외의 방문객이 오셨다.

동네의 교회 목사님이 오신 것이었다.

이 먼 곳까지 오시다니? 너무나 감사했다.

이 교회는 작은 개척교회였는데 아내의 권유로 약 이십 년 전부터 온 식구가 다녔다.

하지만 나는 사업실패 후 가지를 않았다.

장례가 끝난 후 답례로 일요일 예배에 참석했다.

그런데 내 눈을 끄는 물건이 있었다.

단상 우측에 세워놓은 예쁜 기타가 눈에 익었다.

오래전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내가 사준 기타가 분명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얼마 전 이런 생각을 했어. 살아오면서 많은 실패를 하였는데, 내가 가장 잘한다는 것은 음악이었는데 너무 쉽게 포기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뒤늦은 나이지만 작곡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 오직 통기타와 오선지만 있으면 작곡은 할 수 있지. 만일 좋은 곡이 만들어지면 유명 가수에게 권해 보고, 만일 그 곡이 유행한다면 나는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어. 교회에 아들이 치던 기타가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어. 다음 주에 목사님께 말씀드리고 기타를 찾아와.'

아내는 저작권료가 생길 수 있다는 말에 어떤 기대를 하는 눈치가 보였다.

다음 주 일요일에 아내는 기타를 찾아왔다.

나는 기타 줄을 갈고 삼십 년 만에 연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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