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 할머님의 사랑
슈퍼에 갈 때마다 서너 개씩 집어오는 아보카도는 그냥 아보카도였다. 아보카도를 하나 집어 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추억에 잠기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아보카도는 그냥 일상이 되어버렸고, 나는 추억을 까맣게 있고 지냈다. 어제 남편이 '아보카도'라는 글감을 던지고는 총총 자리를 떴을 때, 사진 한 장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일상이 되어버렸던 아보카도가 특별해졌다. 남편이 마법주문을 외우자 긴 망각의 세월에서 아보카도가 깨어났다!
2006년 여름, 미국인 남편과 연애를 한지 일 년 정도 접어들었을 때 함께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 국적이 다른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처음 뵙는다고 생각하니 무척 긴장되었지만, 화려한 무늬의 빨간 패도라 모자를 쓰고 한국산 도자기 화병이 담긴 상자를 손에 들고 공항을 누비던 나는 그저 신이 난 여행객이었다. 공항에서 남자 친구의 부모님께서 나를 열렬이 환영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며 비행기를 탔다.
시애틀 공항에서 지금의 시어머니를 처음 마주했던 날의 기억은 사실 그리 유쾌하지 않다. 일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막내아들을 챙기느라 바쁘셨는데, 나를 향한 시어머니의 시선이 살짝 곱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막내아들이 외국인 여자랑 결혼을 해서 여자의 나라에 눌러살면 어쩌나 하는 어머니로서의 우려였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결혼을 했고, 나 때문에 어머님께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과 십여 년이 넘는 시간을 이별하며 사셨으니, 나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 정도야 충분히 이해해드리고도 남는다. 그저 고맙고 죄송하다.
시애틀에서 며칠 머문 후, 캘리포니아에 있는 남편의 외할머니 집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외할머니께서는 남편보다 나를 더 반가워하시며 두 팔 벌려 맞아 주셨다. 미리 할머니 집에 와계셨던 어머님은 여전히 말수가 적으셨는데, 내가 못마땅해서였는지 아니면 원래 조용하신 분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만들어놓은 레모네이드 한잔을 들고 집 뒷마당 그늘에 앉아 있으니, 찌는 듯한 한여름 더위도 잠시 물러났다. 남편이 멀찍이 서있는 나무 한그루를 가리켰다. 아보카도 나무라고 했다. 태어나서 아보카도를 보는 것도, 아보카도 나무를 보는 것도 처음이라 신기했다. 가까이에 가서 나무를 올려다보니, 아보카도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큰 가지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음 날 남편이 나무 위로 올라가 아보카도를 땄다. 할머니께서 나에게도 나무에 한번 올라가 보라고 권하셨다. 둘이 그렇게 아보카도 나무 위에 걸터앉아 있을 때 할머니께서 사진을 찍어주셨다. 군인처럼 머리를 짧게 자른 남편과 까만 긴 머리를 뒤로 땋아 묶은 나는 푸른 잎이 무성한 아보카도 나무 위에서 그저 해맑고 생생했다.
할머니께서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내게 무한한 애정을 보여 주셨다. 할머니의 다정한 말과 애정 어린 눈빛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내게도 외할머니와 가족이 있었지만, 한 번도 다정한 말과 눈빛, 칭찬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남자 친구의 외할머니에게 이런 조건 없는 애정을 한 몸으로 받을지는 꿈에도 몰랐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좋아하는 멜론과 토마토를 항상 사다 두셨고, 옥수수도 자주 삶아 주셨다.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내가 지내면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항상 꼼꼼히 챙기셨다. 여든이 넘으셔서 보청기를 끼고 계셨고, 악센트가 있는 내 영어 발음은 더욱 알아듣기가 힘드시다 보니, 내가 말을 할 때는 남편이 영어를 영어로 다시 번역하는 희한한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할머니는 개의치 않으셨다. 그저 내 얼굴을 보고만 있어도 좋아하셨다. 대화를 깊이 나누지도 못하고,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데도, 심지어는 한국이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온, 단지 손주의 여자 친구일 뿐인 나를 할머니는 왜 그렇게 좋아하셨을까. 남편의 외할머니는 그렇게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아무 조건 없이 그저 내가 나라서 무한정 나를 예뻐해 주신, 내 인생의 태양 같은 존재. 할머니와의 만남으로 나는 환한 빛 한 줌을 마음속에 지니게 되었다.
2008년 1월에 남편과 나는 결혼을 했다. 2009년 4월 케일라가 태어났고, 그 해 8월 우리는 두 번째로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할머니는 케일라가 태어난 첫 해부터 케일라가 여덟 살이 되던 해까지 우리 가족과 한두 달씩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흔 살이나 차이가 나는 할머니와 케일라가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삶이 참 경이롭게 여겨졌다. 남편은 미국에 갈 때마다 방치된 채 볼품없이 자라고 있는 아보카도 나무를 단정하게 손질했다. 할머니 집을 방문할 때마다 할머니의 어깨는 더욱 구부정해져 있었고, 케일라는 한 뼘씩 더 자라나 있었다. 다 같이 갓 딴 아보카도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달콤 새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먹었다. 한 입 베어 물면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우던 멜론을 매일 먹었다. 주말이면 옥수수를 삶고 스테이크를 구워 뒷마당에 둘러앉았다. 할머니는 케일라와 놀아주기 바쁘셨지만, 나를 향한 다정함도 잊지 않으셨다. 케일라를 양육하는 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알고 보니 시어머님은 그냥 말수가 적은 분이셨다. 케일라를 보러 한국에 거의 매해 오셨는데, 한 번은 여행 가방에 아보카도 몇 개를 숨겨 오셨다. 아보카도를 다 먹고 나자 어머님께서 씨앗을 따로 모으셨다. 어느 날 아침에 보니, 아보카도 씨앗이 물이 가득 담긴 유리잔 상단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보카도 씨앗을 발아시키기로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이게 과연 자라날까 의구심이 들었다. 일 주, 이 주가 지나도 별 기미가 없던 아보카도 씨앗은 한 달 후 어머님께서 떠나신 후에야 발아를 시작했다. 아보카도를 옷으로 돌돌 말아 고이 싸면서 어머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 당신이 나고 자랐던 작은 집, 당신이 어릴 적 타고 놀았던 아보카도 나무, 다 커서 가족을 이룬 막내아들, 며느리인 나, 그리고 케일라의 풍경으로 가득했던 여름. 웃음소리. 추억들. 상실.......
내가 처음 아보카도 나무를 만났던 날, 나의 태양 같은 존재를 만났던 날이 망각에서 살아났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그저 신이 났던 청춘이 아보카도 나무 위에 앉아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태양 같은 할머니가 나를 향해 따뜻하게 웃으신다. 말수가 적은 어머님께서 어느새 다 커버린 아들을 바라보며 쓸쓸해하신다. 중년의 나에게 아보카도가 마술을 부린다. 쨍쨍했던 햇볕 아래에서도 무서울 게 없었던 나에게로 나를 데려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