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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Mar 04. 2022

예쁜 친구 지니

그녀는 너무 예뻤어

색연필 수채화 강좌에서 지니를 처음 만났었다. 우연히 서로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지니의 첫인상은 무척 강렬했다. 선명하고 예쁜 이목구비와 환한 미소는 누구라도 반할 만했다. 수업을 들은 첫날부터 우리는 솔직하게 마음껏 수다를 떠는 사이가 되었다.


지니와 함께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지니에게 쏠리는 것을 자주 감지할 수 있었다. 무뚝뚝하시던 식당 아주머니도 지니에게는 상냥한 말을 건넸다. 한 번은 식당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 손님들이 지니에게 연락처를 묻고 싶어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지니가 예쁘기도 했지만, 예뻐서라기보다는 그녀의 온화한 미소와 상냥한 말씨에 사람들이 반하는 것 같았다. 지니를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덩달아 마음이 환해졌을 것이다. 누군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렇게 모두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구나 생각하며, 마법을 부리는 것 같은 지니가 신기했다.


나보다 어리고, 키 크고, 날씬하고, 예쁜 지니와 함께 다닐 때면, 나의 존재는 대중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젊음과 환함이 부럽기도 했지만, 지니와 나를 비교하며 자격지심에 빠질 만큼 어린 나이는 아니었는지라,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예쁜 아이 옆에 딸린 시녀처럼 보이는 존재로 하강할지라도 그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나는 지니와 정반대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억지로라도 입꼬리를 올리고 있지 않으면 사람들이 화가 났느냐고 묻는다. 새침한 첫인상 때문에 처음에는 말 걸기가 꺼려졌다는 이야기를 지인들에게서 종종 듣는다. 가만히 있으면 무뚝뚝하거나 새침해 보이는 내 얼굴은 결국 내가 만든 것인데, 괜히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어 진다. 지니는 어떻게 그렇게 미소만 가득한 얼굴을 가질 수 있었을까. 지니도 힘든 성장기를 거쳤는데, 그 얼굴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다.


내가 지니를 좋아했던 이유는, 나를 아무렇게나 대해서였다. 어쩌다 보니 내 주위에는 온통 나이 어린 지인들이 가득한데, 대부분 나에게 연장자로서의 예의를 갖추었기 때문에 소외감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지니는 나이에 상관없이 나를 친구처럼 대했다. 우리는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서로에게 쏟아냈다. 같이 열변을 토하고, 위로하고, 웃고, 의논했다. 거기에 때로는 각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의문과 질타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지니가 정말 좋았다. 여자들 세상에서 눈치가 없어서 가끔 오해를 불러일으키던 나는 여자들과의 관계가 무척 어려웠는데, 지니에게는 마음껏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지니가 아프다. 내가 사랑하는 천사 같은 지니가 많이 아프다. 아파서 퉁퉁 붓고 딱지로 거뭇거뭇해진 지니의 얼굴을 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렸던 밤, 혼자 펑펑 울었다. 차마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진 속에서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던 지니는 그 고통 가운데서도 여전히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어젯밤 드디어 지니와 통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지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씩씩하고 밝았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얘기하고 있을 지니 얼굴이 상상이 갔다. 많이 힘들 텐데,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몸에 남아있는 에너지를 겨우 짜내어 대화를 이어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지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무척 절망스러웠다. 


색연필 수업 시간에 내가 사물을 꼼꼼하게 정밀 묘사하고 있을 때, 대범한 손놀림으로 사물의 특징만 잡아서 쓱쓱 그려대던 지니, '언니, 그건 아니지'라며 이의를 제기하던 지니, 자유분방함 가득하던 지니의 생각들이 참 그립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종교에 묶여 있지 않았다면, 지니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발현되지 못한 무한한 에너지와 가능성이 내 눈에는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알고 있을까.


지니가 이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리라고 믿는다. 지니의 강인함을 믿는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몸이 회복되고 나면, 지니가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아니, 지금부터라도 '나'를 먼저 챙기기를 바란다. 지니의 무한한 에너지와 가능성이 하나둘씩 길을 뻗어나가길, 그 길 어디쯤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나의 벗, 지니, 내 삶에 함께 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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