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과 친구 사이
지인과 친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지인이라고 말하기에는 그 말이 주는 거리감 때문에 적합하지 않고, 또 친구라고 말하기에는 막말을 주고받을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귀담아 들어주는 사이, 그래서 만나면 속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면서 공감과 신뢰를 주고받는 사이는 지인일까, 아니면 친구일까. 특히나, 둘 사이에 십 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있다면?
지인과 친구 사이인 그녀가 오늘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는 감히 친구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보다 열한 살이나 어린 그녀가 나를 친구로 여겨주기에는 좀 부담스러울 것 같다. 그녀가 조심스러워하니, 나도 조심스럽다. 만나면 한참을 얘기하고 놀지만, 서로 놀려 먹는 농담 따먹기를 하지는 않는다. 남편이 내린 친구의 정의가 떠오른다. '심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라면 친구이다.' 듣고 보니 그럴싸한 대답이었다. 친구들끼리 골려먹으며 깔깔깔 웃어젖히는 즐거움만큼 재미난 게 있을까.
평소에 인간관계에서 나이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가끔 내 나이가 걸림돌 같기도 하다. 친구들이라고 칭할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은 적다. 어디를 가나, 나는 최고참 언니이다. 언니라고 대접을 절대 받고 싶지 않지만, 동방예의지국의 동생들은 늘 나를 언니라고 깍듯하게 대한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그룹에서 불편한 존재일까 봐 염려스럽고, 아주 가끔씩은 외롭기도 하다.
미국에서 만난, 친구라고 부르고 싶은 그녀는 현재 지인과 친구 사이, 내가 먼저 농담을 마구 던져볼까? 한번 골려볼까? 서로 말을 높이고 있는데, 그냥 말을 놔볼까? 나는 그녀가 참 좋다. 그래도 부담스러운 큰언니가 되고 싶지는 않고, 고민을 해봐야겠다.
진국인 그녀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다. 이민 선배로서, 나의 심리상담사로서, 산책 동행자로서, 의지할 가족 같은 존재로서 내 곁에 있어주는 그녀에게 늘 감사하다. 나이만 먹고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열한 살이나 많은 이 왕언니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일까. 아, 쪼그라드는 자아. 뭐라고 내세울 게 없다. 그래도, 외로운 이민생활에서 그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 정도는 되리라 짐작한다. 시간이 더 지나고 우정을 좀 더 쌓다 보면 서로 마구 놀려먹는 친구가 될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