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이 나다
아프리카 땅콩, 새깜디, 석가탄. 그랬다. 나는 참 작고 까맸다. 58명의 학생들이 빼곡히 차 있던 교실에서 나는 항상 58번 번호표를 단 아이였으니, 내가 참 작다는 것은 어린 나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까맸던 건지 그 당시에는 알 길이 없었다. 짓궂은 놀림에 울기만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집에서는 어른들이 '곰'이라고 불렀다. 말수도 적고, 잘 웃지도 않고, 뚱하고, 걸핏하면 운다라는 상세 설명까지 덧붙여 곰이라고 불렀다. 울고 있던 내 앞에서 못마땅한 눈초리를 퍼붓던 엄마와 동네 아줌마들의 얼굴에 담겨 있던 게 짜증이었는지, 염려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철없던 아이들이 좀 자라고 나면, 사람의 외모를 놀려먹는 별명을 더 이상 부르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다정하게 서로 이름을 부르지도 않는다. 사춘기를 보내던 교회에서 나는 '명' 혹은 '멍'으로 불렸다. 그때는 이름의 중간 글자를 따서 부르는 게 유행이었다. '명'과 '멍'은 큰 어감 차이를 보인다. 똑똑하고 차갑던 '명'이 어리숙하고 친근한 '멍'으로 둔갑하는 신기한 경험 했는데, 사람들이 '멍'이라고 불러주는 게 내심 기뻤다.
대학교에서도 이름에 기인한 별명을 즐겨 썼다. 이번에는 이름의 중간 글자가 아닌, 첫 두 글자의 조합으로 서로를 불렀다. 그래서 나는 '정명'이 되었는데,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정명'이 어느 순간 '정맹'이 되어 있었다. '정맹'이라는 별명이 붙자 나는 또 어느새 좀 맹하고 낭창한 이미지로 둔갑해 있었다. 사실, '정맹'이라는 별명을 따라서 내가 변한 건지, 아니면 맹하고 낭창했기 때문에 '정맹'으로 불린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멍'으로 불렸을 때처럼 '정맹'이라고 불릴 때가 참 좋았다. 까칠한 외모와 말투로 늘 첫인상에서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친근한 별명을 부르며 다가와주는 게 고마웠다.
대학교에서 또 다른 별명을 얻게 되는데, 그 별명은 바로 지금까지도 내가 쓰고 있는 닉네임 '검은 별'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검은 별'이라고 적인 쪽지를 받게 되었는데, 내가 조직원으로 뽑혔다는 황당무계한 소식이 담겨 있었다. 조직원을 만든 기영이 오빠는 우리 과에서 피부가 가장 까맸다. 그리고, 내가 바로 탑 오 등 안에 든 것이다. 같은 조직원끼리 유대감을 가지며 특별한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기영이 오빠와는 오래도록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이메일의 시대가 열렸을 때, 나는 '검은 별'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검은 별'은 어릴 적 보던 어린이 티브이 시리즈의 영웅이다. '안갯속의 바람인가, 검은 별, 검은 별, 검은 별. 나타났다 잡히고, 잡혔다가 사라지네.' 주제가에 담긴 의미가 좋았고, 까만 나의 캐릭터와 딱 일치하는 닉네임이었다.
'검은 별'이 담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도 좋았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 사이에서 굳건히,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존재하는 검은 별 하나. 그게 '나' 같았다. 검은 별은 내게 '블랙쉽'과 같은 의미이다. 흰 양 떼 사이에 섞인 검은 양 한 마리. 어디에도 섞일 수 없는 존재, 꿋꿋하게 서 있지만 좀 외로운 존재. 이십 대의 나는 먼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딘 가에 있을 또 다른 '검은 별'을 상상하며 위로를 받은 것 같다.
싸이월드가 한창일 때, 내게 또 다른 닉네임이 주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갖게 된 근사한 닉네임에 정말 기뻤던 순간이었다. 대구은행 본점 전산정보부에 잠시 일할 때였다. 본점 건물에 사내 도서관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종종 책을 빌려 보곤 했다. 어느 날, 다른 층에서 근무해 인사만 주고받던 사이였던 성우 씨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알고 보니 성우 씨는 지역 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하고 있었다. 사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때마다, 책 표지 안쪽에 붙어 있는 대여자 기록 카드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다고 성우 씨가 말했다. 문학에 대한 공감대로 우리는 싸이월드 친구가 되어 교류했는데, 어느 날 성우 씨가 나에게 근사한 닉네임을 선물해 주었다. '별을 쫓는 야생마'. 성우 씨는 내가 별을 쫓는 야생마 같다고 했다. 내게는 과분한 닉네임인 것 같았지만, 한 동안은 정말로 내가 별을 쫓는 야생마라고 생각했다. 별을 쫓아 어디라도 달려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힘든 결정의 순간에 처해있을 때, 별을 쫓는 야생마를 마스코트처럼 떠올렸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영어강사로 일할 때에 나의 영어 닉네임은 '토니'였다. 갑자기 영어학원에 취직을 하고 보니, 영어 이름이 필수라고 하는데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좋아했던 배우 양조위의 영어 이름 '토니'를 따서 나도 '토니'가 되기로 했다. '토니'가 되고 나서 알고 보니, '토니'는 아이들이 공부하던 영어교재 시리즈의 캐릭터 중 하나였다. 나는 공룡 '토니'가 되어 버렸고,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무척 즐거워했다. 토니라는 이름은 내 인생 오 년의 역사를 함께 한 뒤 퇴사와 함께 사라졌는데, 최근 다시 그 이름을 부활시켰다. 나는 다시 토니라는 가명을 달고 원서모임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이쯤이면 '별마'라는 브런치 작가 네임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별을 쫓는 야생마'에서 두 글자를 따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별을 쫓던 야생마였던 내가 떠올랐다. 웅크리고 가만히 숨죽이고 앉아있던 십 여 년의 시간 속에서, 가끔 별을 쫓던 야생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마음이 참 아팠다. 어떻게 하다가 발이 묶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발 일으켜 보기도 했지만, 다시 풀썩 주저앉기 일쑤였다.
'별마'라는 어감이 사실 나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게다가 유치하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엄습할 때 나의 길잡이가 되어줄 선명한 이미지 인지라, '별마'가 되기로 했다.
지금 나는 원서로 영어 공부하는 '토니'이자, 브런치에 글 쓰는 '별마'이자, 그냥 나 '명희'이다. 사실, 그냥 나인 '명희'일 때가 가장 좋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영어 이름을 쓰지 않고 '명희'를 쓴다. 촌스러운 내 이름이 불리는 게 정말 싫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내 이름이 참 다정하고 귀엽다. 모두 내 이름을 특별하고 다정하게 불러준 사람들 덕분인 것 같다.
'별마'라고 지어놓고, '별마'가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아, 별명의 역사를 되짚어 봤다. 그리운 얼굴들, 정말 보고 싶다. 더불어 '별마'로 만나게 될 또 다른 인연들,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