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은별 Toni Apr 26. 2022

방문

불안이 찾아올 때 알아채

  여덟 시쯤 잠에서 깼다. 방문이 꼭 닫혀 있었다. 딸의 등교 준비로 부산했을 아침이 방문 하나로 차단되었고, 나는 늦잠을 잤다. 푹 자라고 배려해준 남편의 마음이 방문 하나에 가득했다. 눈 뜨자마자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이불속에서 뒤척이고 있는데, 인기척을 듣고 남편이 방문을 열었다.

  "푹 잤어?"

  "아니, 요즘 며칠 악몽을 계속 꿔."

  "어떤 악몽?"

  "아래께는 내가 행복하다고 잘난 척을 해서, 모든 엄마들이 내게 경멸의 눈빛을 보내더라."

  남편에게 어제 꾼 꿈은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다. 정말 이상한 꿈이었다.   

  요즘 불안 혹은 불만족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가슴이 쿨렁, 쿨렁 파도를 탔다가 잠잠해진다. 쓸데없이 맘 카페의 익명게시판을 기웃거린다. 익명의 사람들이 나 같은 성향의 사람을 매섭게 공격하는 모습을 읽고 있으면 잠시 가면을 쓴 인간이 무서워진다. 익명게시판에는 상처받은 영혼들만 가득하다. 그 영혼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도 물론 넘쳐난다. 어쨌거나, 나는 왜 갑자기 그곳을 염탐하고 있게 됐을까? 내 불안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요즘 악몽을 꾸는 이유가, 내가 좀 불안해서 그런가 봐. 그런데, 뭐가 불안한지 잘 모르겠어. 한 가지 짚이는 게 있다면, 음, 아무래도 글을 쓰지 않아서인 것 같아.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놓고는, 계속 실천하지 않고 있으니, 마음이 불안한가 봐, 다시 허 지부지 될까 봐. 그런데, 무엇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 당신이 글감을 좀 던져줄래? 딱 한 단어만 말해 봐."

  "아보카도"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남편이 '아보카도'라고 말했다. 아보카도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리에 번뜩 떠오르는 장면 하나! 남편은 나의 푸념을 들으며 왜 이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을까.


  오늘부터 남편에게, 케일라에게 글감을 받아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길게 쓰지 않아도, 잘 쓰지 않아도, 꾸준히 쓰다 보면, 계속 꾹꾹 밟다 보면, 어느 방향으로 길이 나 있으리라 믿는다. 그 첫 발자국으로, 아. 보. 카. 도. 를 남기러 출발!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질문 하나,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너에게 이로운가, 해한가?' 익명게시판에 기웃거리는 것은 너에게 이로운가, 해한가. 글을 쓰는 것은 너에게 이로운가, 해한가. 달리기를 하는 것은 너에게 이로운가, 해한가. 부질없는 걱정으로 헤매는 동안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너에게 이로운가, 해한가. 달콤한 낮잠 한 시간이 너에게 이로운가, 해한가. 타인의 시선이나 의견이 너에게 이로운가, 해한가.

  집집마다 산딸나무가 서있는 우리 동네는 지금 온통 분홍빛이다. 바람은 아직 선선하지만, 햇볕이 따뜻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이로움의 기운이 훅 몰려온다. 익명게시판에서 묻혀 온 어둠의 그림자를, 내 마음속에서 쿨렁 쿨렁 파도를 타며 간을 보고 있는 불안을 이로움으로 닦아 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별명의 역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