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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Aug 17. 2023

공저 책을 만드는 색다른 길

2023 여름의 흔적/공저 책. 캔바 디자이너.북클럽

무엇을 하느라 여름이 다 지나갔을까. 분명 마음도 몸도 바빴는데 손에 쥐어진 게 없다. 차라리 브런치에 100일 글쓰기를 꾸준히 할 걸 그랬나. 26에서 멈춘 글이 참 애잔하다. 


바쁜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 하고 브런치에 왔다. 브런치에서 삽질을 하고 있을 때에는 이게 과연 무슨 득이 될까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었는데, 몇 주만에 찾아오니 또 느낌이 다르다. 홈웨이 차림으로 동네 친구 집에 놀러 간 것 같은 이 친근하고 편안한 마음은 또 뭘까? 친구 집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모양새로 글을 쓴다.


<해녀들의 섬> 작가 리사 시와의 줌토크는 취소되었다. 날짜를 조율하는 동안 리사 시가 마음을 바꿔버렸다. 미국 엘에이의 시차와 한국의 시차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한국 시간 아침 6시, 미국 시간 오후 2시를 제안했는데, 리사 시의 눈에는 이게 불가능해 보였나 보다. 미라클 모닝 붐으로 출근 전 새벽에 일어나 자기 계발을 하는 한국의 일상이 상상이 되지 않았을 게다. 우리 북클럽 멤버들은 새벽 6시에 모여 줌을 켜고 낭독의 시간을 가지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리사 시는 새벽 6시에 참여자가 많지 않을 거라며 우려했다. 리사 시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취소를 해버려서 처음에는 화가 났다. 참여자 10명 이내의 소규모 북클럽이라고 분명 소개를 했었는데 나의 메일을 대충 읽은 것일까? 리사 시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북클럽 초대 행사 사진들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인데, 그래도 북클럽 줌 미팅에 참여하겠다고 해서 무척 감동이었던 순간이 떠오르면서 나 자신이 바보 같기도 했다. ' 미국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 한국의 작은 북클럽 독자들과 만나다' 이런 그림은 결국 동화였던가.


리사 시의 참여 없이 멤버들끼리 줌토크를 했다. 사실 리사 시가 없었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책 얘기를 실컷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리사 시가 시차를 핑계 삼아 한국 독자와의 만남을 취소해버린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해녀들의 섬>은 미국 독자들과 한국 독자들에게 분명 다른 시각으로 읽힌다. 미국 독자의 리뷰를 살펴봤는데, 그들에게 <해녀들의 섬>은 뼈아픈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책이라기보다는 그냥 어느 조그마한 나라의 신비스러운 이야기처로 다가가는 것 같았다. 역사의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인 한국인의 시각, 한국인의 견해와 질문을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작가로서 이런 점이  조금 두렵지 않았을까? 이건 그냥 내 짐작일 뿐이다.


처음 취소 메일을 받고 화가 나서 남편에게 나 대신 리사 시에게 이메일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내 서툰 영어로는 감정 표현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남편이 쓴 메일을 보고 놀랐다. 아주 정중하게 썼지만, 나 기분이 좀 좋지 않소라는 뉘앙스도 담고 있었다. 리사 시에게 유감을 표하는 메일을 보내고 나서도 언짢은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북클럽 멤버들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며칠 후 우리끼리 줌토크를 하면서, 그리고 리사 시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사과의 답장을 받고 나서 기분이 풀렸다. 그녀의 변덕에 수긍이 갔다.


리사 시 북토크 해프닝이 일단락되고, 공저 책 쓰기에 돌입했다. 매주 토요일 여섯 명의 공저자들이 회의를 하면서 한 꼭지씩 글을 썼다. 여섯 명 중 출간 작가는 한 명뿐이다. 그 외는 나처럼 다 글쓰기가 낯선 사람들이다. 그나마 뜨문뜨문 글 쓴다고 깨작거린 나는 좀 형편이 낫다. 다른 공저자들은 글쓰기를 처음 해보는 분들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는 각자 쓴 글을 합평하고, 서로 아이디어 발상을 돕겠다며 여러 차례 개인별 상담 시간을 가졌다. 초보자들끼리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조언을 주고받으며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무척 재밌다. 함께 모여 멋모르고 무작정 영어 원서를 읽으면서 성장했던 것처럼, 또다시 무턱대고 글을 쓴다.


공저팀이 쓴 글은 말 그대로 날 것이다. 그래서 생생하다. 처음에는 막막하여 무엇을 풀어낼지 감을 잡지 못했던 팀원들이 한 주 한 주 지나면서 달라졌다. 글감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글을 쓴 흔적이 진솔하게 펼쳐졌다. 글을 쓰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모두에게 유익했던 것 같다. 글쓰기가 치유이며 성장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시간들이 쌓여가고 있다.


나의 경우 공저 글을 쓰기 전에 좀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원서 읽기 예찬을 쏟아낼 생각에 신이 났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좀처럼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현재 다섯 꼭지를 완성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이거였나라는 의문이 든다. 왠지 엉뚱한 걸 쓴 기분이다.


매주 한 꼭지 글을 쓰는 동안 캔바 심화 과정 15일 차를 끝냈다. 삼 주 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캔바 수업에 할애하느라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대여섯 시간 동안 과제를 하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 과제 수행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사실 정말 미친 게 아닐까.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시간을 투자하나 싶었지만,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면 멈출 수가 없었다. 15회 차 과정이 끝나갈 때, 불안증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지만, 커리어로 이어지지 않고 또다시 자격증 하나 더 획득하는 걸로 끝이 날까 싶어 불안했다. 핵심 불안을 회피하느라 상관도 없는 온갖 염려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틀 밤잠을 설쳤다. 캔바 심화 과정이 끝나고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캐나다에 계신 수강생과 나에게 미국에 있는 환경적인 장점을 살려 디지털 파일 판매 쪽으로 준비해 보라고 조언하셨다. 도대체 팔릴까라는 마음을 물리치고 일단 시작하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소매를 붙잡고 절대 놓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지난 이틀은 출간 기획서를 쓰느라 바빴다. 함께 성장하기라는 모토에 맞게 여섯 명이 각자 출간 기획서를 만들어 출판사 20여 곳에 투고를 하기로 결정했다. 공저 책을 이런 식으로 내는 팀이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니까 가능한 발상이 아닐까? 그래서, 난생처음 출간 기획서라는 것을 만들어 봤다. 먼저 팀원들의 글들을 모두 취합하여 읽어 봤다. 기획자의 눈으로 읽어 보니, 불안했다. 여섯 명의 색이 다 다르고,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지 않은 것 같고, 우리 글에서 독자들이 과연 무엇을 얻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팀 리더와 통화를 했다. 리더의 말에 의심의 밧줄을 잡은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리더라는 자리가 그냥 만들어지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추진력과 긍정심은 타고나는 것일까? 늘 시작도 전에 망설이며 포기하는 나와 무척 비교되었다. 


리더의 긍정 에너지를 받아 PPT로 출간 기획서를 만들다 보니, 다시 뭔가 만들어지겠다는 기대감이 생겨났다. 제목을 짓고 목차를 만들고 기획 의도, 타겟층, 마케팅 전략을 만들어 봤다. 캔바 템플릿에서 고른 핑크색 PPT가 좀 촌스러운 것 같았지만 일단 완성하고 나니 뿌듯했다.


팀원들이 올린 글에서 꼭지 2개를 발췌하여 묶었다. 서로 다른 양식으로 글을 작성한지라 편집하는데 시간이 좀 소요됐다. 그리고 출판사 투고 리스트를 작성했다.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출판사 검색 코너를 활용했다. 에세이, 글쓰기, 인문 분야 목록을 살펴봤다. 결이 비슷한 책을 출간한 출판사 몇 곳을 간추렸는데, 출판사의 투고 이메일 주소를 찾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인스타,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출판사 정보를 캐내야 했다. 그렇게 찾아낸 열 곳에 원고 투고 이메일을 보냈다.


이제, 약간의 희망과 거절에 대한 마음의 대비를 단단히 하고 출판사의 답장을 기다리면 된다. 좌충우돌 우리의 노력은 과연 공저 책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지치고 헤매다가 또 으쌰으쌰 힘을 모으는 우리에게, 몇 달이 걸릴지 기약할 수 없는 이 과정이 어떤 식으로라도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리라 믿는다.


이렇게 여름이 훌쩍 지나갔다. 내가 돈도 되지 않는 일에 미쳐 있는 동안 남편이 또 고생을 했다. 정말 미안하다. 남편을 위해서라도 공저 책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돈이 되는 일을 슬슬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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