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한 마음 들게 해서 미안해요
서운한 마음이 드는 쪽보다 서운한 마음이 들게 하는 쪽에 속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서운함의 강도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크다. 그러니까 최측근인 가족이 내게 가장 서운할 것이고,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친구와 지인으로 범위가 확장될 것이며, 마지막으로 사교를 막 시작한 관계에서도 서운한 마음을 갖게 하는, 한 마디로 나는 못된 인간이다.
서운한 마음이 들도록 상대방을 콕 찌르는 나의 이기적인 유전자는 어떤 연유로 이렇게 촘촘하게 프로그래밍 되었을까? 상대방이 나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채면 내 마음도 따끔하다. 적극적인 애정 공세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하는 게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 다행히도 서운한 마음은 상대방과 나의 상호 신뢰와 포용력으로 덮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가끔은 서운한 마음 때문에 하루아침에 관계가 뚝 끊긴다. 아쉬움이 크다.
구차한 변명일지 납득 가는 항변일지 모를 내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고찰을 늘어놓기 전에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자. 누군가에게 호감과 애정이 생기면 잘 해주고 싶다. 친해지고 싶다. 내 시간을 공유하고 싶다. 소중한 인연으로 인정받고 싶다. 그래서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만나서 밥을 먹고, 맛난 음식이나 선물 등 자꾸만 뭔가를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 마디로, ‘챙긴다’는 티를 팍팍 내게 된다. 상대방이 정말로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서로 챙겨주는 상호작용이 일어나면 관계에서 얻는 기쁨이 크다.
그러나 나와 상대방의 성향이 다를 때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너를 좋아해서 이만큼 표현했는데, 너는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거지?’ 상대방의 반응이 나처럼 적극적이지 않고 뜨뜻미지근할 때 마음에 슬쩍 의심이 생겨난다. ‘왜 내 카톡 문자에 대답이 없지?’, ‘왜 항상 내가 먼저 연락해야 하는 거야?’, ‘나는 이만큼 챙겨줬음에도 불구하고 너에게는 이제껏 뭐 하나 받는 게 없어’, ‘나를 만만하게 보고 이용하는 거야?’ 내 마음은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대방의 태도는 변함없이 무미건조하다. 그러면 확신하게 된다. ‘너는 나를 나만큼 좋아하지 않구나.’ 서운한 마음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해 준 정신적 물질적 ‘기브’와 상대방이 내게 준 ‘테이크’를 따져 보지 않을 수 없다. 측정 결과 내 ‘기브’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아 분하다. 이렇게 따지는 내가 치사하게 여겨진다. 나를 치사하게 만든 상대방이 원망스럽다. 화난 마음이 분명 물질적 손해에서 온 건 아니다. 내가 준 마음을 상대방이 헤아리지 못해서, 바로 그게 그토록 억울하고 슬픈 것이다. 슬픔이 낸 상처를 혼자서 꿰매며 더 이상 아프지 않으려고 관계를 끊는다.
나는 상대방의 정성을 헤아리면서도 그대로 돌려주지 않는 못된 인간이 맞다. 카톡 메시지에 바로 대답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온 세계가 폰 안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이 드물다. 내 안부가 궁금할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 드리지 않는다. 시댁에도 마찬가지다. 365일 붙어사는 남편을 알뜰하게 챙기는 법이 없다. 친절한 이웃에게 같이 놀자며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당당하게 제 할 말은 다 한다. 이런 수동적이고 재미없는 나라는 인간도 누군가는 좋아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내 태도를 개선할 의지가 없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나의 이기심 때문에 남을 괴롭게 할지언정 내가 괴로웠던 적은 드물었다. 물론 깊은 서운함과 상처를 입은 관계가 내게도 있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 마음 좋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 서운한 적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무뚝뚝하고 뭐 하나 먼저 챙겨주는 법이 없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다. 내가 연락이 뜸해도 그러려니 한다. 바쁘게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족도 남편도 마찬가지다. 포기를 한 건지 내게 뭘 기대하지 않는다.
구질구질한 변명이라도 하자면, 일단 나는 게으르고 에너지 레벨이 매우 낮다.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고 빠릿빠릿하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뭘 읽는 게 힘들다. 선물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너무 어색하고 민망하다.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게 닭살 돋는다. 성격 자체가 애교나 상냥함과 거리가 멀다. 약간 남성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털털하고 솔직한 편이라 가식 떠는 게 힘들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별로 없다.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이런 나의 태도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에서 기인한 것일까? 아니면 높은 자존감과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서 온 것일까?
이기적인 인간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나와 오랜 친분을 쌓고 있는 사람들을 정말 좋아한다. 시차를 핑계로 이들에게 연락하지 않고 있지만 혼자 가끔 이들을 떠올리며 가슴 뭉클해 한다. 이들 또한 어느 날 문득 내 생각이 나서 입가가 저절로 올라가리라 믿는다. 좋은 인연을 만난 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멀지만 가까이 있고 서운함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관계, 진정한 가족애가, 사랑이, 우정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번 추석에 가족 외 딱 한 명 카톡으로 안부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래도 괜찮다. 전혀 서운하지 않다. 내년에 한국에 가면 내게 맛난 음식 사 먹인다고 분주할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