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은별 Toni Oct 04. 2024

내 손에는 오각형 별이 있다

쓰작 함께 글쓰기 주제 별

잊고 있었다. 내 손에 있는 별. 오랜만에 손바닥을 쫙 폈다. 침침한 눈에 힘을 주고 손금을 훑었다. 세월이 지나면 손금도 연해지는지 손금 따라 그어진 별이 희미했다. 예전에는 통통한 손바닥을 쫙 펴면 한눈에 쏙 들어오던 별이었다. 별마저 지우는 세월의 무상함이 야속하다. 봉긋한 산을 이루던 손바닥 가장자리는 또 어떤가. 어느새 푹 꺼져 여러 갈래 도랑이 났다. 아, 옛날이여.


언제였던가. 앞머리를 봉긋 새운 여고생 때였나, 아니면 갈매기 눈썹을 그리던 대학생 때였나. 아무튼 어렸던 그때 별을 손에 쥔 여자가 등장하는 책을 읽다가 호기심에 내 손바닥을 보게 됐다. 혹시나 내 손에도 별이 있으려나 별 기대 없이 그저 재미로 손바닥을 찬찬히 살폈는데 이럴 수가. 오른 손바닥 엄지와 검지 중앙을 타고 내려오는 손금, 바로 그 손금이 양 갈래로 갈라지는 시작점에 작고 귀여운 오각형 별이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손에 쥔 별이 내게 특별한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지만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특이한 물건을 나 혼자만 가진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밋밋한 내게 독특한 개성이 더해진 것 같아 자부심마저 느꼈다.


그러나 내 별은 나에게만 특별했다. 내 별을 자랑하고 다닌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손금 이야기로 열을 올릴 때면 내 손에 있는 별을 슬쩍 보여줬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내가 아는 애 중에 말이야, 별을 손에 쥔 애가 있어' 이렇게 말하고 다닐 정도로 신기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 별이 좋았다. 무료한 날이면 손바닥을 쫙 펴고 별을 가만히 바라봤다.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손바닥을 오므리다가, 쥐가 날 정도로 손바닥을 짝 펴면서 별과 놀았다. 모닥불 앞에서 멍때리듯 아무 생각 없이 별만 봤다.


이랬던 내가 언제부터 내 별을 잊은 것일까. 손바닥이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전혀 그 사실을 몰랐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별을 잊고 산 지 십 년은 족히 넘었을 테다. 별 보며 멍때리던 시간은 도대체 무엇으로 대체되었단 말인가. 내 삶에 빛이 서서히 사라지듯 내 별도 빛을 잃었다.


그간 별에서 아예 멀어진 건 아니었다. 나는 '검은별'이라는 자아로 온리인 세상에 살고 있다. 피부가 까맣다고 누가 검은별이라고 부른 게 시작이었다. 또 누구는 내게 '별을 쫓는 야생마'라고 했다. 별이 붙은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 밤하늘 수많은 별 중에 검어서 눈에 띄지 않는 별, 아웃사이더, 그러나 분명 가만히 존재하는 아이. 때로는 야생마가 되어 미친 듯이 날뛰는 아이. 한마디로, 제멋대로인 아이라는 캐릭터로 사람들이 나를 보았거나, 아니면 내가 나를 그렇게 보고 있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오랫동안 별이었다. 이런 내가 내 손에 있는 내 별을 감쪽같이 잊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내가 보았던 밤하늘 별은 또 어떤가. 광활한 우유니 사막 어디쯤에서 라마 고기를 먹고 배탈 나 저녁부터 고열에 시달리는 남편을, 언제 빨았는지 모를 담요에 꽁꽁 싸맨 후, 투어 차량 운전사의 아내가 술집으로 사라진 남편을 좀 데려와 달라고 부탁해서, 운전사를 찾아 캄캄한 밤길을 나설 때, 하늘에서 별이 쏟아졌다. 


이처럼 같은 하늘이지만 다른 하늘 같은, 현실이지만 현실 같지 않은 어느 장소에 가면 언제나 별을 바라봤다. 무엇이 그리운지도 모른 채 향수에 젖어 가슴이 뭉클해졌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와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면서 울컥해졌다. 자연이 온전히 나를 감싸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면서 든든했다. 그런데 말이다, 별이 주는 정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한 번쯤은 내 손에 있는 별을 떠올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별은 특별한 장소에 가지 않더라도 볼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셀 수 있다. 내가 바라는 정서와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특별했던 별이 일상에서는 시시하고 만만하고 별 볼 일 없는 배경일 뿐이다. 내 손에 별도 이런 시시하고 만만하고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되고 만 것일까. 밤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는 것처럼, 내 손을 들여다보면서 멍때릴 여유가 사라진 것일까. 멍때릴 시간은 아주 많았다. 그 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정보를 캔다는 이유로 핸드폰을 수시로 들여다보고, 쓸없는 일로 고민하거나 힘들어했다. 즉흥적인 쾌락으로 도피했다. 손에 별? 그게 뭐 대수인가. 밤하늘에 별? 그게 뭐 어쨌다고.......


손바닥을 다시 쫙 펴고 내 별을 본다. 어? 조금 선명해진 것 같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내 별에 내가 봤던 수많은 밤하늘 별이 소복이 내려 앉는다. 손에 잡으려고 주먹을 꼭 쥔다. 과거를 잡는다. 다시 손을 활짝 펼친다. 예전처럼 내 별을 바라보며 멍때리고 싶은데 여러 감정이 몰려온다. 나는 잘 산 건가....... 오늘 밤에는 내 별을 딸의 손과 포갠 채 밤길을 걸어야겠다. 밤하늘 별을 바라봐야지. 그러나, 사춘기 딸을 어떻게 구슬릴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