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빠짐이 나의 꽃밭이었다

by 연지한

어물쩡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꽃밭이었다

올해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꽤나 잦게
창밖을 내다보면 다 자란 나무와 덜 자란 나무
묘목들
이런 것들이 빗줄기에 뽑혀나가는 것들을 수시로 봤다
어쩐지 밥이 퍽퍽하게 느껴졌다

올해는 이상하리만치 가전들이 죄다 망가졌다
어렸을 때부터 사용해 오던 전자레인지, 텔레비전 등등
엄마의 처녀 적부터 써왔던 것들이라고 했다
죄다 망가졌는데 또 어찌어찌 돌아는 간다
새로 바꾸자고는 하는데 돈도 마음도 없었다
그냥 완전히 죽기 전까진 써봐야지

뉴스를 보지 않은 날이 많아졌다
중국인이 대거 들어온다던지, 정부예산으로 국민에게 돈을 준다던지 세상 천치 같은 내용들로 도배된 내용들이
못 배운 나로서도 우스워서 tv 전원을 껐다
tv를 꺼도 어디선가는 자꾸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편지처럼 날아오는 소리들은 어쩌면 방 안 깊은 곳에서 들리는 듯해서 조각난 내 귀의 퍼즐을 다시 맞추는 일에 몰두하기로 했다

방에 누워 있던지 밖을 걸어가던지 몸은 자꾸만 과거 쪽으로 휘청거렸다
나빠지는 일들 속에서 지나온 나빠짐으로 몸의 중심이 옮겨지고 있었고 지나가야 하는 것들이 모두 씨앗이 되었다

모든 지나침이 자꾸만 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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