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하는 추에 쉼 없이 밀리듯이, 가만히 누운 방에서 둥그런 전등을 따라 아주 조금 멀어졌다, 아주 조금 돌아왔다. 가려면 아예 멀리 가야 하는데 안전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멀리까지 가는 모험은 늘 시도로 전복된다.
홍진이다. 홍진이야.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하루만 사는 족속이라고. 그러나 그런 사상을 가지기엔 30년이나 동고동락한 몸과 정신에게 예의가 아니다. 길 한복판에서 나는 나의 수명을 한 달로 규명하였다. 새로운 달이 도달하면 나는 졸도할 정도로 공포에 떨었다. 1일의 달력이 넘어가면 잠시 사람의 명찰을 반납했다가, 하루가 지나면 돌려받은 듯 다시 태연하게 남은 달포를 유유자적 보내버린다.
일광욕에서 욕 자를 과감히 제해버린다. 권태는 그런 단순한 이유로 나를 거리로 내몰지 않는다. 길을 잃었으니 헤매는 것이 생리다. 햇살이 무참히 쏟아진다. 일광욕은 부산물이다. 이쯤 되면 자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계가 알갱이 하나까지 선명히 보일 때, 가장 현대적인 생존불능의 병이다. 자본주의가 선고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불치병이다. 지나가는 사람의 표정을 읽고, 풀의 흔들림을 보고 계절 안에 있는 풍경을 인식하고 이미 수없이 반복된 것들이 사실은 모두 미세히 다르다는 걸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돌아가는 방법이 전무하다는 걸 무의식 중에 인식한다. 세계가 선고한 불량품이다. 간신히 형체만 존재하는 문학 말고는 어떤 병원에서도 입원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다시 반대편에서 통화하며 걸어오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그 얼굴이 만들어진 세계를 남몰래 훔쳐보고 상상해 본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모르는 사람들의 세계를 하나씩 지나가고 있다. 지지말자. 그럼에도 오늘의 햇살은 유난히 따뜻했으니까.
아프지 않으면 차도를 기대하지 않는 법이다. 이젠 정말 돌아가야 할 때다. 너무 멀리 걸었다. 꿈을 따라서. 표류를 종료하고 다시금 노를 잡아서 나를 이끌어야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남은 생이 너무 많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