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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한

아침부터 많은 눈이 내렸다. 아침부터 켜진 부엌의 불은 영 어색해서 시간이 뻗어나간 길에서 잠시 헤매기 충분했다.


베란다 창으로 사정없이 휘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속으로 숙소로 돌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일기예보에는 오후 3시면 모든 눈이 다 그칠 것이라고 했고 12시 무렵엔 눈에 띄게 내리는 눈의 양이 적어진 것이 보였다. 마침 시켜놓은 책도 있겠다 책을 읽기 위해 카페에 가고자 했다. 옷을 입고 책을 챙기고 노래를 들으며 문을 나섰다. 복도의 창에선 눈이 그친 것처럼 보였다. 너무 많은 눈은 유령이 휘날리는 모습이어서 먹구름을 비집고 들어오는 작은 햇빛에 반가움이 느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공동현관을 지나자마자 햇살 사이로 눈과 빗방울이 섞인 바람이 불었다. 가끔은 하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믿고 안 믿고는 언제나 나의 몫이었지만.


카페로 가 오랜만에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음료를 마실까 해서 고민하다 뱅쇼를 시켰다. 차례를 지키고 음료를 받아오고 읽을 책을 꺼내 탁자에 정렬하고 밖으로 나가 잠시 담배를 피웠다. 겨울이 아니어도 내 숨을 볼 수 있는 것과 겨울이면 더욱 극적으로 토해지는 숨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아직까지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라면 이유였다. 일종의 신비스러운 의식처럼 흡연을 하며 지상에 육신을 고정시켰다.
책을 읽기 위해 다시 카페로 들어와 시집을 꺼내 들었다.


임원묵 시인의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 원래는 이 시집을 읽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지만 가방 한구석에 놓인 것을 보고 다시금 읽어보고자 꺼내 들었다. 시집을 읽을 때면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전체적인 흐름보다는 뇌리를 강타하는 문장 하나만을 눈에 익을 정도로 읽는 편이다. 문학에 대한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습관이지만 그렇다고 또 문학에 정답이 있겠는가 그냥 읽는 거지.

그냥 읽기 위해 산 것 치고는 꽤나 눈에 밟히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중에도 겨울에게라는 작품은 굉장히 맘에 들었다. 지나간 연인에게 쓰는 서간체의 작품이었는데 한 문장 한 문장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굉장히 많았다. 왜인지 거북해져 책을 덮고 자리를 일어났다. 일상에의 반란은 짧게 끝이 나고 나는 또 잊은 줄 알았던 그리움을 그은 채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길가에는 아침에 내린 눈들이 손길도 없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내린 눈은 언제나 팽개쳐질 뿐이었다. 비와 함께 섞인 눈이 눈도 물도 아닌 그 사이의 무언가가 되어 있을 때 나는 그걸 밟으며 어쩐지 거울을 밟는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4시쯤 기상. 두 시간 남짓의 짧았던 기억들은 지나간 무수한 사진을 불러 모았고 나는 다시 이곳을 벗어나기가 두려워졌다. 언제쯤 대체.


2025/01/06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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