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서든 하루에 하나씩 뭐라도 쓰고 있다. 시나 단상 같은 것들 뿐이라도. 그러다 보면 또 그런 생각도 든다. 너무 쉽게 쓰고 있나? 문학적 고찰 부족이나 혹은 형식적 미숙함으로 인한 창작 속도는 아닐까. 또다시 우울해진다. 쉽게 쓰여도 어렵게 쓰여도 제각기 다른 이유로 절망한다. 그 모든 판단기준은 아마 스스로 훌륭한 문학을 하고 있다는 자각의 부재인 듯싶다.
오늘도 시를 하나 썼다. [흰 비둘기].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신호등 앞에 서있는 와중 발견한 흰 비둘기와 어린아이를 보고 쓴 시인데, 30초 걸렸나. 다시 보니 너무 교과서에 실리기 좋은 시를 써버린 것 같다. 너무 쉽게 쓰이는 글들은 가슴이 아프다. 어렵게 쓰인 글들은 절망스럽다. 이래저래 참 피곤하게 산다.
종종, 썩은 물이 태풍에 골라지듯, 강하고 깊게 숨을 토해낸다. 마음의 채기를 전부 다 쏟는 것처럼. 아직까진 사는 게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쉬어도 되는 것 같은데, 자꾸만 나쁜 것처럼 마음이 위장병을 앓는다.
'어제 가엾다고 본 일은 어제의 가여움이다. 오늘 자신이 할 일은 끊임없이 있기 때문에 잊는다는 생각도 없이 잊으니 삶은 꿈만 같다. 이슬 같은 세상이라고 하면 눈물이 절로 떨어지겠으나 그보다 더 부질없는 일은 없다.'
ㅡ「가는 구름」에서
히구치 이치요의 소설 [가는 구름]의 한 구절이다. 역시 할 일이 있어야 무엇이든 망각의 축복을 겪는 건가. 무엇이든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학을 벗어나지 못한다. 정신이 점점 골고다 언덕으로 다가가는 기분이다. 할 일은 없고, 해야 할 일은 넘쳐나니 나는 이치요의 말대로면 가수면 상태인 게 아닐까. 이빨이 달달 떨리는 두려움. 감성돔이 암수를 고르듯이 나도 구직과 무직을 저울질한다.
누나의 집에 놀러 와서 들은 소리인데
"네가 집을 물려받을 때 제일 걱정이 집이 생겼다고 게을러지지 않을까였는데 예상을 벗어나질 못하네."
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래도 이 황금시대에 이 정도로는 품위를 얻을 수 없나 보다. 정신의 채찍질에 지쳐 도망쳐온 곳에도 채찍이 도사리고 있다. 온 세상이 채찍이다. 역시 그런 정신상태니까 문학에 얼씬거리고 있는 거겠지.
형체가 없는 것들의 형체를 만들어 종이로 이식시킨다.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 안 되는 중도의 상태. 인생에서도 실패한 걸 문학에까지 원하는 욕심쟁이다.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인 시]를 떠올린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써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고등학생 때 국어시간에 배운 시를 서른 살이 된 첫 달에 떠올린다. 확실하게 이건 천형이다. 그래도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무던해지지 못한 죗값을 이렇게 돌려받는다. 황금이 찰그락거리는 세상에서 문학에 접을 붙인다는 건 확실히 죄가 된다. 윤동주 시인이 그러했듯이, 글을 쓰고 있는 게 부끄러워지는 날이 결국 오게 된 것이다.
열심히 살아야지.
죗값도 치러야 될 테고, 남들 눈에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역시 돈도 벌어야 하니까. 나만의 고민과 사회적인 고민 두 가지 다 처리해야 되니 지금의 휴식을 조금 인정해 주기로 했다. 어쩌면 이 정도밖에 살지 못한 것도 어찌 되었건 열심히 살아온 거 아닐까. 과분한 위로를 떠올린다. 살아야지. 살아야지. 깊게 숨을 토해내는 대신 이 말을 중얼거리며 고단한 형기의 만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