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서한집을 읽고
다자이 서한집을 읽고 있다. 촤라락 넘기는 페이지들 사이로 유독 눈에 띄는 문장.
'사람을 미워하면 늙어가는 것일까.'
그럼 나는 몇 년 치의 노화가 진행되어 있는 것일까. 사람에 대한 평가들은 이미 오래전에 끝마쳤고 요새는 세상에 까지 확장되어 버리고 말았다. 가속노화.
책을 읽다 보면 머리 안에서 나의 모습이 3인칭으로 스쳐 지나갈 때가 많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배회한다. 안절부절못하며 두 걸음이면 끝날 방황을 수없이 반복한다.
과연 길을 잃은 게 육체일까 정신일까.
원하는 가치와 해야만 하는 가치가 상충한다.
이건 늙은 게 아니지. 이런 일은 진작에 졸업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등학교를 나오면서 사물함에 두고 온 교과서처럼 같이 넣어두고 왔어야 하는 것들이 아직까지 몸에 기생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미성년으로 20년을 살았으니. 나는 성년으로 10년 밖에 살지 않았다. 앞으로 10년은 더 살아야 무엇이든 갈피를 잡는 게 생리이지 않을까. 경험치의 부족이다.
서른이나 되었으면서 아직도 고민을 가지고 있다니. 어디로 걸을지는 이쯤이면 정리가 끝나야 할 것도 같은데 쉽사리 정답을 찍지도 못한다. 간단한 문제일지도 모르는데, 식물이 꽃 피는 일에 집중할지 씨 뿌리는 일에 집중할지 조금만 머리를 굴려보면 간단한 일이다. 그렇지만 여태 봄에 피어난 꽃잎에 홀려 화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하고 불행한 사나이.
아, 모르겠다. 그냥 다 부수어 버리고 싶은 욕망의 발현. 가장 원초적으로 바뀌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나무 숲에 숨어들은 현인들처럼 나도 결국 은자가 되어 조용히 살아가겠지. 적당하고 적절하다. 이미 나는 잘게 부수어졌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팽배한다.
마음의 불안 때문에 책을 다시 펼친다. 내 글을 써야지, 남의 책이나 읽고 있으면 되겠나 싶지만 안 써지는 걸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다. 작년 그러니까 2025년 11월에 첫 단편소설(인생 최초) '복에 겨운 사내들'을 완성했으니 이제 2개월 차 습작가다.(이제 1월 15일이니. 11월 27일 완성이면 따지고 보면 두 달이다.) 조급해하지 말자. 위대해지기를 포기해야 날개가 돋아나는 법이다. 시를 10년이나 써놓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 조의를 표한다. 책을 팔락거린다.
손가락으로 툭툭 책상을 두드리며 새벽의 책상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태우려 책을 읽는 건지, 책을 읽으려 담배를 태우는 건지. 휙휙 지나가는 문장들 사이에서 내 걸 건져 올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루에 한 줄 내지 한 단락. 그렇게 단편소설 하나에 쌓인 게 한 달이다. 창작이 이렇게나 힘든데 퇴고 따위는 하지 않는다. 재능과 역량의 줄다리기. 그럼에도 내가 꽤 괜찮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고 말고. 단순히 소재의 파격이나 서사의 치밀함, 윤리적, 도덕적, 계몽적 사유도 없이 직관으로만 글을 쓰고 있는 광오함. 적어도 오늘날 문학에 필요한 일 아닐까. 나는 그 길의 선봉적인 역할을 하는 중이다라고 명명한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정진.
졸음이 조금씩 쏟아진다. 새벽 4시의 기상. 생활의 정상화를 도모함. 어차피 쉬고 있으니 일어났다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서재의 불을 끄고 침실로 입장한다. 이불속에 누워 가슴속에 쌓아 올리던 돌탑에 돌멩이 하나 더 쌓아 올린다. 여명이 차오르는 새벽이지만 침실엔 아직 남아있는 어둠이 많다. 과호흡으로 헐떡이다 잠에 든다. 자고 일어나면 카페에 가서 글을 써야지.
인간으로서 마지막 자격. 우두커니. 우두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