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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한

이제 이런 건 아무래도 좋아졌다. 8개월의 방황을 끝으로 다시 일자리를 구했으니.


사는 일이 참 마땅치 않은 일이다.

무언가를 해보려는 것보다 무언가를 포기해 버리는 일이 더 많아진다. 차라리 누군가 손을 잡고 끌어주었으면 하는데 이젠 그런 식으로 살게 되면 한껏 욕을 얻어먹게 된다.

역시나 생활의 수행이 부족한 탓이다. 30년을 살고도 기본적인 수행의 부족을 논하는 것 자체가 폐품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오늘은 다행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꽤나 만족스러운. 동네에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육가공 공장인데, 돼지의 등뼈를 취급하는 곳인 듯했다. 대단한 기술도 없고 가뜩이나 전공 아니면 경력자만 뽑는 세태에 질려가는 와중 가깝고 돈도 벌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직종이 중요하겠나, 바로 지원했고 입사를 명 받았다. 입사와 동시에 내심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도 든다. 속된 말로 백정. 30살의 건장한 남자가 자기 앞날의 설계는 내팽개치고 그저 당장의 불안감 때문에 모든 기회를 저버리고 몸이나 쓰면서 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히 부끄러웠다. 조금의 지지라도 받을 겸, 누나에게 전화해 어떤 것 같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너 지금 너무 일해야 된다는 강박 때문에 하향지원 하는 거 아니냐? 그냥 보안 쪽 더 찾아보지 그러냐."

하며, 내 섣부른 지원을 내심 못마땅해했다. 그 말을 듣고 더더욱 창피한 마음이 들어 구구절절 내 지원에 대한 핑계 혹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집에서 가깝고, 월급도 적당하고, 돈만 모으면 장땡이야. 하며 나의 입사에 자기 위로와 당위성을 동시에 챙기는 악수를 두었다.

참 부끄러운 사람이 되었다. 누군들 멋진 일, 남들에게 밝히기 좋은 일을 안 하고 싶겠나. 나도 명예가 있는, 부가 있는 직업을 가지고 싶지만, 이미 노쇠한 정신은 간신히 일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한다. 불민. 불민.

돼지도 죽을 때 유언을 남길까. 큰소리로 울부짖는 울음소리에 어떠한 마지막 언어를 남기는 것일까. 이제 나도 돼지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 생활에 정착하는 순간 문학은 완치돼버린다. 16:30분의 노동을 끝내고 내가 한 자라도 남길 수 있을까. 빨간 불빛 4개가 멀리서 방까지 순식간에 들이닥친다. 정체를 알 수 없다. 어느 건물 옥상에 설치된 불빛인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돌리면 계속 눈이 마주친다. 아직까지 저 불이 보이는 걸 보니 문학이 완치는 아닌 것 같다. 통원치료 정도라고 하자. 아직까지 나는 소설을 내려놓을 자신이 없다.

육가공에 취업했다는 사실은 일단 주위에 감춰두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럽기 그지없기에. 결혼과 연애를 완전히 내려놓은 결정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기에 어디 구석의 식품회사에 취업했다 정도로 타인에게 타협하기 했다. 모두가 폼나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하지만 폼나지 않는 세상이다. 한 마디로 역설이다. 어디선가는 비극의 냄새가 몸 위에서 빠지지 않고 배겨 있다.

어쩐지 갓 태어난 기분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30년 동안 방탕이라는 관에 누워 가수면 상태로 누워 있다가 막 눈을 뜬 그런 천진난만한 느낌이다. 분명 육체적, 사회적으로 30세. 그런데 이제야 눈의 시야가 바로 잡힌 느낌이다. 확실히 이런 불행은 나이를 자각하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 30세의 명찰을 달고 있는 갓난쟁이다. 아니면 노인일지도. 무엇이 되었든 나는 단 한순간도 청년의 역할을 수행해 본 적이 없다. 자신 있게. 확실히 사는 일을 몰라야 자기 자신의 직업에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같다. 갓난아기와 노인. 둘 중 무엇을 골라야 할까.
아기의 몸에 노인의 눈을 가진 것과 노인의 몸에 아이의 눈을 가진 것, 둘 중 무엇이 더 비극이고 불행인지 고민해 본다. 우열을 가릴 수가 없지만 나는 이미 그 둘을 모두 지나쳐 봤다.

겨울이 끝나가는 마지막 지점이다. 2월이 지나고, 3월이 지나고,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계절을 통과할 때면 엉엉 울고만 싶어진다. 10대에도 20대에도 30대가 된 지금도 변함이 없이. 여름이라는 날카로운 계절이 이번엔 어떻게 문자로 된 몸을 찢고 지나갈지 모를 일이다. 그저 참다 참다 겨우 한 두 줄 쓰고 말겠지. 생활을 벗어나고 싶지만 미비한 재능 덕에 별 수 없이 다시 생활에 복귀하는 유예의 일주일이다. 문학에 완전히 잠식되지도 생활에 완전히 몰입하지도 못하는 반쪽자리의 삶이다.

올해의 모토. 최저낙원. 이미 진부해진 표현으로 생활에 이름을 짓는다. 인식 없이 흘러가는 축복이 내겐 없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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