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한여름을 기다리고 있는 마음으로 나의 계절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면, 어릴 적 나는 여름과 겨울을 가장 좋아했다. 매일 학교와 학원, 집을 오가는 똑같고 바쁜 일상 속에서 방학은 마치 쉼표 같았으니까. 방학은 지친 음표들 사이에 찾아온 달콤한 쉼표 같은 것이었다. 방학에는 모든 것이 일탈처럼 느껴졌다. 느지막이 일어나 방문을 열면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본다.
“토스트 먹을래? 아니면 밥 해줄까?”
나는 기지개를 쭉 켜며 답한다.
“토스트! 엄마가 만들어 놓은 오디잼 잔뜩 넣어서.”
엄마는 그 흔한 딸기잼은 만들지 않았지만 보랏빛 오디잼만큼은 유독 즐겨 만드시곤 했다. 엄마와 함께 달달한 아침 식사가 끝나면, 텅 빈 도화지 같은 하루가 오롯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학원이라는 작은 점 하나 외에는, 무한한 자유가 펼쳐진 시간이었다.
그 시절, 방학은 내가 읽고 싶었던, 벼르고 별러 왔던 책들을 읽는 시간이었다. 내 방 구석진 곳으로 가 학기 중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길고도 긴 이야기들이 난무한 책들을 골라 잡았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면 그 공간은 어느 때보다 아늑했고, 비가 내리는 날은 이보다 더 운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책으로 둘러싸인 이 작은 세계를 나는 아주 사랑했다. 토지에 나오는 '서희'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거나, 그리스 로마 신화의 괴상한 이야기에 눈을 떼지 못하기도 했으며, 해리포터가 되어 마법학교를 연신 누비기도 했다. 그래서 독서의 계절이 언제냐고 내게 묻는다면, 단연코 가을이 아니라 여름이라고 말한다.
사실 지금의 나는 특별히 더 좋아하는 계절이 없다. 모든 계절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봄에는 언제 흩날릴지 모를 꽃구경을 부지런히 나서야 하고, 초록 잎이 무성한 여름은 비루하기 짝이 없는 수영 실력이지만 헤엄치고 다니기 바쁘다. 후덥지근한 공기를 쏴악 밀어낸 색색깔로 물들인 가을산을 오르는 것도 잠시. 세상을 죄다 얼릴 기세로 돌변하는 칼바람이 내려앉는 겨울에도, 아늑한 집에서 추위로 움츠렸던 어깨를 펴며 포근함을 한껏 누리기에 모든 계절이 아쉬울 뿐이다.
그럼에도 내 기억 속에 오래 머물다 가는 계절이 있다면 그것은 여름일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가 난무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여름에만 꼭 집어드는 책과 영화가 있을 정도이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여름을 삼킨 소녀> 시리즈 3권과 콘 이굴던의 <칭기즈칸> 시리즈 3권 소설은 항상 여름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다. 상당히 길어 시간을 넉넉히 확보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잡아들기 힘들다. 2년에 한 번꼴로 잡아드는 것 같지만, 여름에는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보다는, 두툼한 소설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읽어도 읽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소설책은 마치 한여름 밤의 끝없이 펼쳐지는 꿈같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현실 세계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리게 된다. 여름방학은 모든 것을 잠시 멈추어 놓고 흠뻑 젖어들기에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었다.
소설뿐 아니라, '치코와 리타'나 '아메리칸 셰프', '라라랜드' 같은 영화도 여름이면 함께 떠오른다. 미국 서부나 멕시코, 쿠바의 강렬한 햇살과 자유로운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상기된다. 이 쨍한 여름은 매일이 축제 같아서 항상 소란스럽고, 활기찰 것만 같다. 하지만 이내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뜨겁게 달아올랐던 세상은 한풀 숨을 고르며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낮의 활기찬 축제는 아련한 꿈처럼 저물고, 고요하고 깊은 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저마다의 시련들이 하나둘씩 모여 아련한 여름밤으로 물들여버리니까.
찬 바람이 불어오면 여름밤의 낭만은 또 잠시 접어두겠지만, 그 낭만을 즐기기 위해 내년 여름을 계속해서 기다린다. 그래서 1년 중 가장 열정적인 이 여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여름은, 단순한 계절을 넘어 삶의 가장 뜨거운 페이지이다. 그래서 괜히 여름만 오면 요상하게 심장이 쿵쾅거린다. 끝난 줄만 알았던 나의 청춘도 여름 덕분에 반복되는 것 같아 괜스레 반갑다. 여름은 매년 찾아오니까 나의 청춘도 매년 반복되고 알려주는 것 같아서. 이번 여름에도 ‘청춘’이라는 기차에 편승하기 위해 살포시 발 한번 뻗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