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우회하는 순간 내 몸은 왼쪽으로 쏠리면서 창문에 기대 졌다. 참 낯선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댔던 적이 언제였더라. 불현듯 '사람 인(人)'의 한자가 떠올랐다. 짝대기 두 개를 기울인 모양인데 사람 두 명이 서로를 기대는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사람을 좋아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사람으로 인한 상처뿐이었던 나날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 입에 오르고 내리며 평가될까 봐 '폐를 끼치기 싫다' 말로 적당히 포장한 뒤, 혼자 완전무결한 척 살아왔다. 하지만 '사람 인'에서 보여주듯 사람은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걸 지금의 남편이 알려주었다.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소중한 순간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함께 이야기 나누며 공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나중에 떠올릴 추억도 없다는 뜻이라는 걸 그 덕분에 알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떠오르는 추억이 딱히 없다. 입시 전쟁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다른 모든 스위치는 꺼놓고 지냈기에 학급에 너도나도 다 하나씩은 있는 단짝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이 지냈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 겨울에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버스 두 자리는 나 홀로 독차지를 해야 했고, 2인실 숙소도 예외 없이 나 홀로 차지해야만 했다. 국내도 아닌 무려 대만, 홍콩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는데 내 기억 속에 남는 장면은 정작 하나도 없었다. 그건 아마 사람과 나눈 추억이 없었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21살에 만난 지금의 남편이 참 든든하다. 나의 20대를 그가 고스란히 기억해 주고 있기에 나눌 추억이 한 보따리이다. 아마 이런 것이 사람 사는 맛이 아닐까?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살맛 나는 추억'이 가득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