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늦된 사람 Oct 24. 2021

유산遺産을 대하는 한 가지 방법

사장이 되었다 2

남편이 어머니와 누나로부터 받은 유산은 1991년에 준공된 층당 15평 남짓한 3층 건물이다. 준공된 이후, 남의 손에 맡겨져 있다시피 하며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해 상처 투성이었다. 깨진 창문이 쉽게 불행을 불러들이는 것을 상기하며 나는 형님에게 말했다. 

"조금 고쳐서 제대로 세를 받는 것은 어때요?"


이런 집도 있어야 그런 분들도 살 집이 있지 


준공 이래 거의 올린 적 없는 임대료만큼이나 내부 집기들도 준공 상태와 거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세입자는 시에서 전세보증금을 지원받는 분들이거나 친인척이 보증금을 대신해주는 저소득층 분들이었다.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투병 중인 형님을 대신해 남편이 계약 갱신이나 세입자가 요구하는 내용들을 처리해주었다. 종종 따라나선 길에 본 건물은 비루하기 이를 때 없었다. 세입자 중 한 분은 정체불명의 쓰레기들을 주워다 건물 입구를 막아 놓으셔서 동네 사람들에게 원성을 사고 있었다. 치워달라 부탁하는 일이 잦았다. 돌보는 손길이 없어 땟국물이 흐르는 아이처럼 건물은 낡아가고 있었지만 그때는 형님도 남편도 건물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형님이 떠나고, 이듬해 10월 말 즈음 모든 세입자들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다. 오랜 기간 방치되다시피 한 건물은 보수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외벽의 떨어진 타일들과 허술한 출입문은 언제든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건물 유지 보수를 위해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10여 년 넘도록 임차를 하신 세입자 중 한 분이 건물 매입의사를 밝히셨다. 

얼마에 팔아야 할까. 남편은 긴 고민의 시간에 빠졌지만, 도무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상속은 감정과 기억을 더한 값이므로 그 값을 얼마큼의 숫자로 매겨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감정을 분리하여 실체로 접근하는 노력을 하였다. 공인중개업소에 시세를 확인하였다. 일대 비슷한 형태의 건물이 매물이 나온 바가 없어 형성된 거래가 없다고 하였다. 대체로 주변 상가 건물주들은 자신의 건물에서 장사를 하고 남는 공간은 임대를 주며 노년을 보내었다. 노후된 곳이라 제 값을 받기도 어렵기도 하고, 당장의 매매보다는 보유로 가는 것이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거리에는 변화라는 키워드가 일찍이 삭제되었을지도. 경북 북부 일대에서 나름 손꼽히는 상설시장이지만, 전반적인 상설 재래시장의 위축과 중소규모 도시의 상권은 발전 가능성을 쉽게 긍정적으로 전망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심지어 이 골목은 상설시장의 사대문 안에 들지 못하는 위치에 있어 시장성이라는 것은 계산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또 이 일대의 부동산 시장이 거래가 없는 것은 상인분들이 오랜 기간 실거주 목적으로 지내시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게에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다는 가장 큰 장점으로 이 분들의 폐업, 가게 이전 등의 생업과 관련한 생활패턴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집은 이만큼 좋은 위치도 없다.  어쨌든 이 일대의 매물 가격은 의도치 않게 우리가 거래를 성사한다면 최초 신고가가 되었다. 남편이 여러 사정들을 고려하여 매물 가격을 결정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 세입자가 아닌 다른 새로운 분이 건물 매입 의사를 밝히며 가격을 물으셨다. 



좋지도 않은 건물을 뭘 그렇게 비싸게 받아요?



거래는 서로 간의 이익이 맞아 성사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불발될 수도 있다.  거래의 전제조건은 상호존중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안목에 대한 자부심이 밑바탕이 된 것이다. 그분은 본인이 매입의사를 가진 물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가격을 깎을 속셈으로만 그 본연의 가치조차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셨다. 그런 경우에는 흥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가치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 뒤, 그 가치에 대한 값을 매기는 것이 흥정이지 가치 자체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남편의 통화를 듣고 난 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후다닥 끊어버린 전화도 마음에 걸리는데, 하물며 유산을 복잡하고 골치 아파 폐기물 다루듯 처분하면 안 되는 거였다. 감정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저지른 일들은 그 보다 더 큰 무게로 다시 되돌아온다. 숙제를 하지 않아 선생님께 혼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들키지 않으려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을까 또 겁먹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 그마저도 둔감해져 미루어서 하지 못한 일들을 대하는 자기만의 거짓말에 익숙해진다. 익숙해진 자기 왜곡은 원래의 지점으로 다시 펴기는 참 어렵다. 휘어진 만큼 되돌아가는 힘도 그 이상으로 든다. 그즈음 남편은 연이은 가족의 상실로 우울과 무기력이 반복되던 때였다. 그를 지켜보고 있을 때면, 그나마 곁에 둔 처자식으로 간신히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남편이 너무 휘어져버려 또는 너무 멀리 가버려 돌아올 수 없지 않도록, 남편을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들은 나로서는 그에게 이것은 '숙제'임을 말해야 했다. 물론 숙제를 받은 당사자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도 함께 말했다. 안 하거나, 대충 하거나, 한 번 해보거나, 잘하거나 등등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그의 몫이다.   

이전 01화 숙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