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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Oct 24. 2021

건물만 리모델링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장이 되었다 3


아는 것이 더 무섭다고. 이미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는 우리는 건물 리모델링에 차마 손을 데기 싫었다. 건축이나 리모델링이 돈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그렇지 않은 일이 없지만!) 알아서 해달라고 할 만큼의 넉넉한 돈이 있지 않다면, 애매한 크기의 돈으로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업체의 제안을 이중삼중으로 재검토하느라 10년은 늙는 기분이다. 심지어 이렇게 꾸역꾸역 마친 공사는 아쉬움과 후회를 입주 선물로 받게 된다. 


숙제를 한 번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남편에게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한 나는 공사 방향과 예산 범위를 정하고 몇 군데의 업체들과의 견적 미팅을 해나갔다. 직장 생활 중인 남편을 대신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건축은 내가 남편보다 관심과 흥미가 뿐만 아니라 이해도가 더 높았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해당 업무의 적합성이 가장 높은 내가 주로 맡아서 진행하였다. 그래 봐야 말귀를 알아듣는 정도이지만 나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원하는 이미지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구현해 줄 기술자를 만나는 것이 관건이었다. 친인척 관계인 한 업체와 계약을 하려다 서명 날인 막판에 틀어졌다. 공사 담당인 사장님께서는 그간의 포트폴리오와는 다른 스펙을 만들 수 있다는 설렘으로 접근하셨지만 회계 담당 사장님께서는 이제까지 맡아 온 아파트 가정집 인테리어와 다른 다른 차원의 건물 리모델링이 부담스러워하셨다. 무엇보다 내가 회계 담당 사장님의 부정적인 메시지에 감응하듯 믿고 맡기가 염려되었다. 그 후, 최종 3군데의 업체와 미팅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진정성을 앞세운 대기업 대리점 업체를 선정하였다. 이때만 해도  '진정성'이 우리의 발목을 잡으리라고는 당시에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작년 12월 리모델링 계약서에 남편은 서명하였다. 


계약서에 서명 날인하는 자리에서 나는 건물의 리모델링 목적과 의의를 한참 설명하였다. 리모델링을 시작하기 전, 마음의 높낮이를 맞추고 싶었다. 공사 기간 중에 여러 껄끄러운 일들이 있었지만, 나는 이 순간만큼은 계약 상대편인 업체 담당자분이 공감해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러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 노후 건물 리모델링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계절 상으로 북극 한파 초입이기도 하고, 건축물의 용도 변경과 대수선 허가 등의 행정 절차를 거치는 것이 먼저였으므로 봄을 기다리며 내실을 다지는 작업을 진행해나가기로 하였다. 건축주 직영으로 내 집 마련을 해본 경험자로서 남의 손에 맡기는 리모델링이 마냥 순조로울 것이라 예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혼자 뛰는 것보다는 러닝메이트가 있으면 훨씬 수월할 것을 기대하며 대행업체를 선정한 것이다. 


여기서 내가 한 가지 심각하게 간과한 것이 있었다. 나에게 업체는 계약서에 서명한 순간부터 'only one'이지만, 업체에게 나는 '여러 고객들 중의 하나'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업체에서는 외벽 누수와 단열을 이유로 노후 건물 리모델링의 트렌드인 외벽 징크 마감을 제안하였다. 예산의 범위가 훨씬 초과하는 금액인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두 번째로는 일대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징크로 감싼 형태가 노후 건물 트렌드라서 우리 건물의 특색을 잃게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외벽과 외관은 최대한 현행을 살리고 내부 변경에 집중하면서 업체의 마진율이 많이 낮아졌다.  

아파트 리모델링은 규격화되어 있어 각 공정별 담당자들과 협업을 해나가는 것이 대체로 매끄럽다. 노후 건물은 그렇지 못하다. 일단 정확한 설계도가 확보되어 있지 않아 전선, 상하수도 배관이 어디서 어떤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음을 각오할 필요가 있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면 다행이지만, 누수가 있을 경우 참 곤란하다. 우리 현장은 골조만 그대로 두고 거의 새로 태어나는 수준이었으므로 철거 양도 상당했다. 게다가 시장통 안에 있어 아직도 2,7일이면 장날이 서는 환경적 제약이 있어 공사 날짜를 잡는 것도 까탈스러운 현장이었다. 그러니 업체 입장에서는 순한 현장부터 먼저 도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 있었다. 시장통이라 진입도 불편하고, 일거리는 많고, 돈은 안 되고 업체 입장에서는 무엇하나 예뻐 보이지 않는 현장이었다. 


봄은 그렇게 흘러 2월에는 시작할 줄 알았던 공사가 4월 중순이나 되어야 첫 발을 떼었다. 리모델링은 목표는 누수와 단열의 해결, 각 실의 재조정을 통해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 각 층의 쓰임에 따라 최대한 매력을 살리는 것이었다. 내가 머릿속의 아이디어나 의도를 그림으로 그려서 업체에 전달하고 업체는 건축 설계사나 담당자에게 실현 가능 유무를 확인하고 적용해나가는 절차로 진행하였다. 웬갖 속 썩은 일이 있어도 그래도 이 업체와 잘했다 생각하는 것은 건축 설계사와의 협업을 통해 마구잡이식 리모델링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 실의 조정은 내력벽, 비내력벽을 구분하여 진행해야 건물의 안정을 담보할 수 있고 인접한 건물과 도로에 외부로 나오는 돌출부를 얼마큼 적용할 것인지 해당 법령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진행해야 뒤탈이 없다. 최초에 계약을 하고자 했던 업체와 했다면 건축 설계사와의 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용도 변경과 대수선 등의 절차와 작게는 처마 길이선부터 크게는 끼적인 그림과 말들로 존재한 아이디어를 설계도로 구현해준 것에 이르기까지 큰 도움을 받았다. 

    

2,3층은 똑같은 구조로 만들어졌고 화장실과 안 방은 너무 크고 작은 방과 거실, 작은 주방은 있으나 마나 한 공간이었다. 출입구는 계단 정면에 배치해 있어 건물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입구가 웅장해 보였다. 오각형을 사각형의 집 모양으로 맞추려 하다 보니 생긴 부조화였다. 안방이 크고, 창문은 많아야 하는 건축 당시 트렌드를 따르다 보니 특색이 단점으로 부각되어 버렸다. 

1층은 상가로 각 면에 모두 문을 냈다. 그러다 보니 사방팔방 뚫려 있으면 오히려 기운이 집중되지 못하고 분산되어 산만하다. 예전의 1층 세입자는 단열과 물건 적재를 위해 임시방편으로 한 곳의 출입구를 빼고 나머지 면은 합판으로 막아놓았다. 1층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자기 공간에 대한 해석 없이 그대로 도입하여 오히려 단점을 들인 꼴이었다. 


사람도 건물도 비슷하다. 각자가 생긴 꼴이 있을 텐데 번듯한 모양을 따라가다 보니 정체불명의 이상한 모습을 갖는다. 길을 다니다 보면 비슷한 타일, 비슷한 모양의 외관을 볼 수 있다. 거의 대부분 같은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그 당시의 유행을 따른 것이다. 마구잡이로 따르기보다 조금만 줏대가 있었더라면 좀 더 일찍 자기 몫을 해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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